지난주 뉴욕에서 있은 남북한과 미국의 3자실무접촉에서 북한이 4자회담 이전에 한국에 대해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청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4자회담의 참석을 공식통보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곧 전제조건을 내걸어 참석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지난 1년간 「검토중」이라며 침묵을 지켰던 태도를 감안할 때 하나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방지와 지역의 평화보장 등 중요한 문제를 다룰 회담참석에 전제조건을 붙이는 것은 옳지가 않다. 때문에 정부가 회담전에 반대급부를 제공할 수 없으며 식량지원은 4자회담이 성사될 경우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의 차원에서 남북한간의 경제협력과 함께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천명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 당국도 확연한 원칙고수로 북측의 혼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3자접촉은 실무급이기는 하나 김일성 사망이후 남한당국과의 대화를 극력 기피했던 북한이 이달초의 4자회담설명회에 이어 두번째로, 그것도 북한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물론 그 배경은 식량지원요청을 하기 위해서다.
2년 이상 계속돼 온 북한의 식량사정은 이제 배급이 6개월∼1년 이상이나 중단되는 등 악화일로에 있다. 최근 북한을 둘러본 세계식량계획(WFP)기구의 캐서린 버티니 사무총장은 주민들의 식량배급이 평상때의 6∼7분의 1인 100g으로 줄어 연명하기도 부족하다면서 당장 100만톤이 지원되지 않을 경우 6월전에 식량은 바닥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극심한 식량난으로 강영섭 조선기독교연맹중앙위의장은 남측 교회지도자들에게 『탕자가 죽은뒤 새끼양을 잡아도 소용없다』는 성경구절을 인용, 긴급식량지원을 호소했다. 또 이번 3자접촉에서는 이례적으로 남측에 150만톤의 긴급지원을 호소했다. 저들의 식량난이 완전 바닥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북한이 남한에 대해 직접 식량을 요청한 것은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정치적인 면에서 대남자세와 태도는 하나도 달라진게 없다. 비방과 학생·근로자들에 대한 반정부선동은 여전히 격렬하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같은 형제인 북한동포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식량지원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적십자사를 통한 지원, 당국의 승인 아래 각종 민간단체가 식량과 구호품을 모아 전달하는 일을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차원의 대규모지원은 북한이 평화노력, 즉 4자회담 참여후 다각적으로 지원하는 한·미·일 3국의 공조원칙과 정부의 기본방침을 고수하는 선에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을 가장 적절하고 충분하게 도울 수 있는 것은 남한 뿐이다.
그같은 식량지원과 경제협력은 전적으로 북한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남북간의 승패의 차원이 아니라 동포구제와 공존공영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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