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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설/황금가지전집 첫째권 ‘악마의 묘약’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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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설/황금가지전집 첫째권 ‘악마의 묘약’ 출간

입력
1997.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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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법관,밤엔 작가·작곡가/이중적인 삶 살았던 ‘서구 환상문학의 아버지’ 독일 호프만의 대표작/한 수도사의 기괴한 삶 통해 죄와 숙명,정욕과 경건함 등 신학·철학·미학적 문제 다뤄『우리가 보통 꿈과 상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비밀스런 끈에 대한 상징적인 인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 끈을 억지로 끊어버리고, 우리를 지배하는 어두운 힘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믿는 사람이 자신이 파멸했음을 알았을 때, 그는 그 끈이 어떤 조건하에서도 우리의 삶을 확고하게 연결시키며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오』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를 살았던 독일 작가 E. T. A. 호프만(1776∼1822)은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그의 대표작 「악마의 묘약」(황금가지간, 전 2권)을 이런 말로 시작하고 있다.

삶의 비밀스런 끈을 보여주는 꿈과 상상.

호프만의 이 말은 그동안 우리 문학에서 리얼리즘과 정반대에 서 있는 것으로 치부되며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환상」이라는 요소의 복권을 꾀하는 움직임들을 대변하고 있는듯하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도 충격적이라 매일 보고 듣는 뉴스에서만도 환상이 실재를 훨씬 넘어 범람하는듯한 세상. 현실이 허구보다 훨씬 허구적-환상적이기 때문에 허구를 기반으로 하는 문학의 위기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말이 통하는 현실. 환상의 복권을 꾀하는 목소리들은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한다. 문학이 진창 같은 현실을 넘어서는 진짜 상상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황금가지가 새로이 기획출간하는 환상소설전집은 이렇게 「환상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악마의 묘약」은 이 전집의 첫째권. 이어 애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 리차드 바크의 「환상」, 스티븐 킹의 「다른 계절」 등과 함께 미카엘 엔데, 커트 보네거트, H. G. 웰스 등 환상소설의 대표적 작가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의 작품이 계속 출간될 예정. 카프카의 「변신」도 포함된다.

호프만은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가의 한사람으로 서구 환상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후에 도스토예프스키, 보들레르, 발자크, 애드거 앨런 포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차이코프스키는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을 기초로 해서 「호두까기 인형」을 작곡했고, 오펜바하는 낮에는 법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작가·작곡가·무대미술가 등 다방면의 예술가로 이중적 삶을 살았던 그의 기이한 생애를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로 만들기도 했다.

「악마의 묘약」의 내용은 실제 괴기적이다. 메다르두스라는 한 수도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남긴 것을, 책의 「발행인」으로 불리는 화자가 중간중간 끼어들어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목 「악마의 묘약」은 메다르두스의 내면에 잠재된 자만심과 허영심을 상징하고, 수도사인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미지의 여인 아우렐리에는 정욕을 자극하는 외적 요소이다. 메다르두스가 수도원을 뛰쳐나와 아우렐리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갖가지 변화무쌍한 사건들-또 다른 그 자신으로 여겨지는 미친 수도사 빅토린과 역시 자신의 내면에 존재된 악마성을 상징하는 「이중인간」과의 만남, 결국 복잡한 가문에서 태어난 자신의 의붓형제로 밝혀지는 아우렐리에 등등-이 줄거리다.

책을 번역한 박계수 이화여대 강사는 『호프만은 흥미진진하고도 생생한 묘사로 대중적 괴기소설의 요소를 살리면서 죄와 숙명, 정욕과 경건함, 광기와 정체성, 자아인식과 세계인식, 예술과 현실 같은 신학적 철학적 미학적 문제들을 다뤄 대중적 구조와 진지한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있다』고 말한다. 독자들을 범죄와 모험, 마적인 세계로 끌어들이면서도 자아 분열, 정체성 상실 등 현대의 핵심적 문제의식을 이 작품이 씌어진 19세기 초에 이미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

SF(공상과학)나 추리소설 등 좀 더 대중적인 장르들과 함께 그간 이른바 「순수문학」에 눌린 하위장르 정도로 취급돼 왔던 환상문학. 그것이 상상력의 고갈로 침체에 빠졌다는 우리 문학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아야 할 것같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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