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병리현상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지적된다. 왜 공직부패는 만성적으로 재연되는가. 공직윤리의 미정립에 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공직사회에 적용하는 윤리기준을 일반사회의 그것에 비해 한층 엄격한 시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공직자는 사생활을 반납해서라도 멸사봉공해야 하며,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현행 국가공무원법은 공직자의 행동규범으로 성실 복종 친절봉사 의무, 공정성과 품위 유지, 영리사업 등 겸직과 직장이탈 정치활동의 금지 등 많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80년 12월 선포된 공무원 윤리헌장에서는 역사의 주체, 민족의 선봉, 국가의 역군, 국민의 귀감, 겨레의 기수라는 표현으로 도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환경과 민간기업에 비해 낮은 보수, 당치않은 일로 시비를 걸어와도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큰소리치며 맞서지 못하고, 매스컴을 통해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아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내야하는 경우 등 공직자가 처한 사회제도적 환경은 공직자가 신념을 갖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도록 기대하기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우리는 공직자가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경우 경위를 살피지도 않고 무능 부패 부조리 무사안일 등 혹독한 표현을 거침없이 구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환경제도적인 여건이 미비하다고 해서 공직자가 이를 빌미로 부정과 야합을 하거나 무사안일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작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일부 공직자의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성실하게 소임을 다하고 있는 대다수 공직자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사회풍토가 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공직자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치체계의 변화를 살펴보면, 일반국민과 마찬가지로 유교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가치관이 서구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점차 잠식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성향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여기에다 연고주의 정실주의 등 공직사회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저해하는 역기능적 가치관이 복잡하게 얽히어 일반화한 지배적 가치체계로 굳어지게 된다면 우리가 바라는 공직사회의 모습은 갈수록 퇴색하고 말 것이다.
공직자의 가치체계가 흐트러지면 그것이 곧 부정부패를 부르고 공직기강의 문란, 행정의 비능률,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되며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잃게되어 궁극적으로 국가발전의 선도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공직자의 뚜렷한 가치관 정립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선결과제이자 모든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된다.
바라건대 양식있는 공직자들의 노력으로 공직사회의 가치관 재정립과 의식의 선진화가 이루어지고 실천되어야 한다. 그럴 때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을, 국민에게는 정직과 봉사를 다하는 공직사회가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김종철 전 감사원 감사위원>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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