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일기’ 등 수필가로 맹활약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여동생은 14살. 일찍 시집간 11살 위의 언니는 갈 곳없는 여동생을 데려갔지만 마음은 가시방석이었다. 살고 있는 집은 시부모에 시동생 시누이까지 줄줄이 있는 대가족.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눈치를 보느라 표정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고, 고1이라는 어린 나이에 초등학생 집에 입주과외교사로 들어갔다가 사소한 일로 트집이 잡혀 되돌아오기도 했다. 동생이 밤늦도록 공부를 하면 한 방을 쓰는 시누이들이 불빛이 성가시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것도 미안했다. 어려운 중에도 동생은 성신여대 국문과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4년뒤에는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85년 여동생 부부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자 언니는 그제야 숨을 돌렸다. 언니는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흔 살도 채 안된 서른 일곱의 나이에 서서 이제 내 생애 소원은 없다고 말한다면 어떤 이는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37세에 새로 태어난 삶. 누구든 이처럼 새롭고 경탄에 젖은 생을 맛보고 싶은 이는 37세에 동생을 시집보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 부모는 안 계실 것이라고 주를 달아서』 이 글이 바로 86년 여성생활수기에 우수작으로 당선된 「동생이 안겨 준 선물」이다.
이 글의 필자인 김민희(48)씨는 지금은 베스트셀러 「고부일기」의 저자로 더 유명한 주부수필가. 『86년 여성생활수기 당선이 삶을 크게 바꿔놓았어요』라고 말한다. 이 해부터 김씨는 한국일보 생활면 고정기고란인 「가족일기」를 맡아 주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여러 기업의 사보 등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몸 약하고 살림 잘 할 줄 모르는 며느리가 매사에 호방하고 일도 잘하는 시어머니를 만나 쩔쩔 매다가 친구처럼 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쓴 수필집 「고부일기」는 95년 출간된 후 8만부나 팔려나가는 인기를 누렸다. 시어머니가 이에 화답하듯 곧바로 펴낸 「붕어빵은 왜 사왔니」도 4만부가 팔렸다.
김씨가 늘 애틋해 하는 여동생 선희(37)씨는 지난해 6월 돌아왔다. 캐나다에서 수상소식을 듣고 『우리가 소재 제공을 했으니 상금의 절반은 우리 것』이라고 농담하던 제부 김정구(41)씨는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떠날 때는 둘이더니 이제는 조카가 셋이나 생겼다.
『어렸을 때는 가장 사랑하는 언니를 빼앗아간 형부가 밉기만 하고 조카들이 예쁜 줄도 몰랐다』고 말하는 선희씨는 『엄마 없는 동생 생각에 아이 둘을 맘껏 안아주지도 못했다는 언니의 글을 캐나다에서 읽으며 내가 언니한테 큰 짐이었구나, 언니가 나를 그토록 사랑했구나, 나는 조카들 생각은 미처 못했구나 하는 만감이 교차했다』며 눈물을 비친다.
선희씨가 사는 곳은 언니 집에서 30분 거리. 그러나 시부모를 모시다보니 생각만큼 자주 만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복 받은 거야. 부모님은 일찍 여의었어도 시부모님이 계셔서 어머님 아버님 소리는 실컷 하잖니』 『그래, 맞아. 언니』
두 아들이 모두 대학생으로 훌쩍 커버려 13년전부터 만들어온 가족신문 「거북이」 제작이 시들해졌다고 불평하던 김씨는 이제 8살, 6살, 2살인 조카 이야기로 「거북이」를 채워야겠다고 의욕을 보인다.<서화숙 기자>서화숙>
◎여성생활수기 마감 1주일 앞으로
여성생활수기 공모 마감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최우수작과 우수작으로 뽑힌 여성생활수기에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걸어온 길이 그대로 담겨있다. 80년대 초반의 수상작을 보면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것은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한 현실을 이겨낸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척추마비가 된 외아들을 치료하느라 쉰살에 공장에 취직했던 고희의 이계출 할머니(83년 제1회 최우수작)를 비롯해서 고난을 극복한 맹인부부(84년), 화상으로 불구가 된 남편과 아들을 뒷바라지해온 아내(86년), 농사꾼· 도로공사장 인부·건설현장 막노동자등 가족을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해온 50대 주부(87년) 등의 이야기가 상을 받았다. 취업시 남녀차별을 고발한 대학 졸업반 여학생의 글이 88년 최우수작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해직교사 가정의 어려움(93년), 운동권 출신 주부의 삶(94년), 한국인과 결혼한 중국교포의 갈등(95년) 등 시사적인 문제를 짚은 글이 점점 늘고 있다. 주부로서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한 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사람다운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의 글은 시대를 넘어서 꾸준한 감동을 주는 수기로 여러차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여성생활수기는 여성으로 살며 겪은 진솔한 경험담을 원고지 50매 내외로 써서 4월 5일까지 한국일보사 편집국문화부로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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