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를 처음 배우려면 낙법부터 익혀야 한다. 상대방의 기술에 걸리더라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넘어지기 위함이다. 유도의 진수는 낙법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항상 상대방이 나의 기술에 걸리리라는 보장도 없다. 내 기술이 걸릴 때도 있지만 나 역시 상대방의 기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일단 기술에 걸린 이상 그 기술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이용하든가, 그렇게 안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권투를 할 때 맷집부터 키우는 것도 같은 이치다. 아무리 뛰어난 권투선수라고 해도 상대방의 펀치를 맞지 않고 때리기만 할 수는 없다.
최근의 우리 경제상황을 보면 매번 상대방의 기술에 걸려 나동그라지는 형편없는 유도선수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만만한 선수와 상대해오다 고수를 만나 혼나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주체들이 낙법을 전혀 익혀두지 못했다는데 있다. 웬만한 장애물이나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대다수 기업들이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폭삭폭삭 주저앉는다. 문어발에 공룡의 덩치를 가진 거대기업들조차 위태위태하다. 이상하게도 한번 넘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 나버린다. 툭툭 털고 일어설 줄을 모른다.
바로 우리 경제주체들이 낙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안팎에서 여러가지 악재들이 들이닥치면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대응하고 맞서기 벅차면 적당히 피해를 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경제주체들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의 자세로 덤빈다. 자만에 차있고 무모하기 짝이 없어 경제 전쟁터에서 판판이 당하고만 있다.
낙법의 의미를 깨닫고 평소에 익혀두었더라면 정부나 기업이 부르짖는 긴축·감량경영이나 사회단체의 과소비추방캠페인, 종합상사들의 소비재수입 자제움직임, 저축증대운동, 물자아껴쓰기운동 등이 공허한 메아리로만 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 주체들만 낙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낙법을 모른다. 급변하는 안팎의 상황을 소화흡수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혼비백산한다. 불난 집 같다.
언론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곰곰이 따져보면 오늘의 극에 달한 혼란과 위기감은 언론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언론의 속성상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과장하기도 하고 굳이 들추어 낼 필요없는 사항까지 끄집어내는 상황이 벌어져 결과적으로 역효과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국에서 우리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나, 외국금융기관이 우리 은행들이 당장 도산할 것처럼 위험한 시각으로 보는 것도 언론보도가 한몫을 했다.
모두가 낙법을 익힐 때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배워야겠다. 우리가 만든 현실이든, 외부환경의 변화로 생긴 현실이든 일단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서 그 바탕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추락하는 우리 경제에 날개를 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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