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이나 국가든 나름대로의 예의가 있다. 또 민족, 국가마다 그것의 중요성이나 표현방식이 달라서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한국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여서 예의갖추기가 더욱 조심스럽다.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예의를 갖추는 것이 서툴고 어렵기만 하다. 지금도 그러한데 처음 왔을 때는 오죽했겠는가. 그 땐 유치원생과 다를 바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어른들께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몰라 실수도 많이 했다. 식사하면서도 말을 해야 하는지, 안해도 되는지, 미국에서처럼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먹어도 되는지 잘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의 어머님께서 시골에서 아들을 보러 올라오셨다. 연세도 많으신데다 고생을 많이 하신 친구의 어머님은 예의에 대해 조심스러운 내게는 몹시 어려운 분이셨다. 친구의 자취방을 찾아간 나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익숙해지지 않아 계속 실수를 했지만 어머님께서는 그런 점들을 이해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주셨다. 나중에야 생각한 것이지만 처음 방문길에 식사대접까지 받으면서 빈 손으로 간 나를 어머님께서 얼마나 이상하게 보셨을는지.
어떻게 하면 어머님께 잘 보일까 생각하느라 식사시간 내내 신경이 쓰였다. 나는 최후의 방법으로 「밥을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익숙하지 않은 밥을 먹기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밥을 국에 말아 먹었는데 다 먹고 난 후 남은 국물을 마시려고 대접을 얼굴 가까이 들어올리는 순간, 무엇이 눈에 띄었다. 밥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념도 아닌, 하얀 쌀벌레가 유유히 국물에 떠다니는 것이 아닌가. 아! 이것을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파란 눈의 아들 친구를 위해 정성껏 식사를 마련해주신 어머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두 눈 딱 감고 마셔버렸다.
제법 오랫동안 한국생활을 한 나에게 아직도 한국의 예의란 어렵고 힘들다. 가장 어려운 것이 인사다. 처가에 가면 장인 장모님께 어떻게 인사를 해야하는지 망설일 때가 있다. 큰절을 해야 하는지, 가벼운 인사를 하면 되는 건지. 명절이나 기일엔 더욱 조심스럽다. 그럴 때마다 집사람은 옆에서 적당한 잔소리를 섞어서 당황스러움을 면하게 해준다.
요란하게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다시 고민을 하게 된다. 얼마나 더 배워야 나의 실수는 끝이 날까?<미국인>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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