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리스트」 이번엔 밝혀질까/“어차피 끝장” 폭탄선언도 배제못해/검찰도 「추가리스트」 캐기 강한 의지/1차로 7∼8명 다시 도마에/대가성 확인땐 사법처리 전망검찰이 한보 재수사에 착수한지 4일만에 정보근 회장을 전격 구속하면서 새 수사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1차 수사에서 못밝혔거나, 밝히고도 실정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했던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새로 밝혀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관·금융계에 전방위 로비를 펼쳐온 것으로 알려진 정태수 총회장이 뇌물을 제공한 인사들의 명단은 과연 존재하는가, 또 공개될 수 있을까. 이는 일가의 재산이 모두 압류조치되고 아들 보근씨까지 구속된 상태에서 정총회장의 움직임과 직결되면서 핵폭탄의 위력을 갖고 있다.
검찰은 1차 수사에서 정총회장과 김종국 전 재정본부장 등 한보그룹 관계자들로부터 정치인 10여명에게 3천만∼5천만원씩 선거자금 또는 떡값 등 명목으로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실은 검찰 수뇌부의 입을 통해서도 직·간접적으로 확인됐다. 최병국 전임중수부장은 지난달 19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사실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된 내용이 아니다』고 말해 「진술은 있었으나 사실관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듯이 말했다. 최 전임중수부장은 또 다른 자리에서 『정치인 7, 8명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았으나 현행 정치자금법상 처벌이 불가능해 수사기록에서 제외하고 사법처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기수 검찰총장도 지난달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인들이 5천만원 받은 게 무슨 뉴스거리냐. 범죄행위가 있으면 조사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사할 필요가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아예 조사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크게 달라져 검찰이 계속 정치자금 명목의 금품수수 부분에 대해 덮어 둘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여론의 비판에 밀려 수사책임자를 교체하면서까지 사실상 재수사를 시작한 마당에 당시의 논리를 계속 고수하기는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따라서 검찰은 일단 1차 수사에서 진술을 확보한 신한국당 K, P, 또 다른 K, P의원, 국민회의 K의원, 모 광역자치단체장, L전의원 등 여야 정치인들을 소환해 돈의 성격과 「대가성」 여부를 조사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들 외에 추가 「리스트」를 밝혀낼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이는 정태수씨의 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정씨 비자금중 1차수사에서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2백50억원이 대부분 정·관·금융계 인사들에게 뇌물로 제공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씨의 「자물통 입」을 열기위해 보근씨를 구속하고 정씨 일가의 재산을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며 정씨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정씨가 굴복할지, 끝까지 버틸지는 미지수다.
정총회장은 검찰의 재산압류 조치와 아들 구속에 대해 크게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의 검찰수사가 대부분 정총회장의 입에 의지해온 형편이어서 정총회장의 반발은 사건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 정총회장은 그동안 아들의 신변과 그룹의 재기보장을 담보로 검찰수사에 협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총회장이 입을 완전히 닫아 버릴 경우 앞으로의 검찰수사는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보그룹 관계자들이 『1차 조사때 밝혀진 비자금 2천1백36억원중 검찰이 용처를 찾아낸 금액은 8백억원도 안된다』고 할 만큼 현재 수사진행상황은 전체적인 구도로 볼 때 아직은 시작단계이다. 더구나 성격상 대부분을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정·관계 유착의혹 규명은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정총회장이 입을 완전 개방할 가능성도 높다. 그 경우 무대는 법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총회장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더구나 검찰로부터 얻어낼 것도 없다고 판단하면 법정에서의 폭탄선언으로 「동반자살」을 기도하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건의 파장은 정·관·금융계 전반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도 있다.
정총회장은 또 재산을 찾기 위한 법적대응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측은 『정총회장은 한보철강에 은행대출금 외에 자신의 재산 4천억원을 추가 투자한 만큼 오히려 재산을 환수받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해 이같은 움직임을 뒷받침했다.
검찰은 『비리 사실이 드러나면 누구든지 전원 사법처리하겠다』며 「정태수 리스트」캐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정씨 부자의 입에만 의존하는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혀 다각도로 정·관·금융계와 정씨 부자와의 유착의혹을 조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핵폭탄의 뇌관은 정총회장의 반발과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재산에 대한 미련이 어떤 방향으로 물꼬를 트느냐에 달려있다.<김상철·이태규 기자>김상철·이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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