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바다·화산·유채꽃… 천혜의 관광지 제주/하지만 자연조건에만 기대어 즐길 것 없고 살만한 것 없고 외국인 관광객 없는 ‘3무의 섬’/그곳의 ‘봄’을 어떻게 다시 찾을 것인가「국제적 관광지」라는 제주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은 물론 국내 신혼부부의 발길도 뚝 끊겼다. 낙후된 한국 관광산업의 현주소를 제주도가 유감없이 보여준다.
기자가 1박2일간 제주도의 명소를 일주하는 「버스투어」에 참여해 둘러 본 새봄의 제주도는 역시 아름다웠다. 상쾌한 공기와 푸른 바다, 유채꽃과 감귤밭, 수많은 오름(기생화산)과 낮은 구릉이 어우러진 자연조건은 국내 최고의 관광휴양지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전국에서 모여든 50, 60대 단체관광객들로 북적거릴 뿐 외국인이라곤 5∼10명 단위의 일본, 대만 관광객들이 고작이었다. 기자와 함께 제주도 일주 버스에 동승한 관광객 22명도 전부 내국인이었다. 『왜 이렇게 외국인이 없느냐』는 물음에 여성 가이드는 『외국인들은 렌터카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항에 나와있는 렌터카회사 직원은 외국인의 렌터카 이용 신청은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현지 지리에 밝지 못한 외국인들이 차를 몰고 「자유롭게」 제주도를 돌아다니기란 근본적으로 어렵게 돼 있다. 제주공항에 비치된 교통 지도와 관광지 안내 팜플렛은 영어나 일어 등의 표기가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인 「내국인 전용」이었다. 간선도로의 이정표에는 한글표기 아래 영문표기가 있기는 했지만 워낙 작은 글씨여서 시속 60㎞ 정도로만 달려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용두암→신천지 미술관→조각공원→자연사박물관→중문관광단지→민속촌→천제연·천지연폭포→성산일출봉 등으로 이어지는 버스투어의 코스는 기자가 5년전 찾았을 때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3,000∼5,000원을 내고 조랑말을 타거나 감귤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도 70년대 관광행태 그대로였다. 경남 울산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는 김영태(38·상업)씨 등 3명은 『신혼여행 이후 몇번씩 본 것』이라며 내내 버스에 머물렀다.
제주시내의 기념품점에 진열된 상품도 구태의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옥돔 등 일부 특산물을 빼고는 돌하루방 인형과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열쇠고리 티셔츠 볼펜 등이 주류였다.
새로 개발된 볼거리라고는 중문단지내 로얄마린파크에서 지난해말부터 열리는 돌고래쇼가 고작이다. 돌고래쇼장에는 허름한 술집에서나 들을 수 있는 빠른 템포의 「트롯 메들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밖에서는 서귀포시내의 나이트클럽 종업원들이 『밤을 책임지겠다』며 관광객들에게 열심히 광고지를 돌렸다. 『세계적 관광명소로 키우겠다』던 중문단지의 모습이다.
관광코스에는 교묘한 상술로 건강보조 식품을 파는 농장까지 들어 있어 짜증을 더하게 했다. 가이드는 『도청이 지정한 감귤농장에 들르겠다』며 서귀포 S농장으로 안내했으나 「영농후계자」라는 농장 관계자들은 감귤얘기는 한마디도 않고 『고혈압과 당뇨병에 특효』라며 1병에 3만원인 영지가루를 판매하는데만 열을 올렸다. 그들은 관광객들을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며 아양을 떨어 관광객의 반이상이 영지가루를 1, 2병씩 사도록 했다. 농장입구에서는 워키토키를 든 3, 4명의 청년들이 연신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제주도 관광진흥과에 확인한 결과 이 농장은 도청과 무관했다.
제주도에서는 이제 신혼부부를 찾아보기도 어려워 졌다. 한 택시기사는 『2, 3년전까지만 해도 한달에 5차례는 신혼부부 길안내와 사진촬영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는데 요즘에는 한달에 한번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제주관광협회가 1,208명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신혼여행객은 121명으로 전체의 10.1%에 불과했다. 제주 경실련의 장성철 사무국장은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닌데 단조로운 보여주기식 관광을 좋아할 신세대는 없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했다.
반면 이 조사에서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46.2%로 가장 많았다. 가족끼리 쉬고 즐기는 휴양여행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아직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시설이나 이벤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호텔에서도 숙식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고 밖에 나가더라도 낚시 사격 패러글라이딩 등의 레저상품과 현지 문화행사가 크게 부족하다.<유성식 기자>유성식>
◎‘붐비는’ 사이판/천혜자연을 값싸게 즐긴다/연녹색바다·하얀모래밭 이용 각종 해양레포츠 개발/“제주보다 싸고 서비스도 좋다”
태평양의 작은 섬 사이판. 울릉도의 두배쯤인 185㎢의 크기에 인구는 4만3,000명 정도지만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73만6,000여명의 관광객이 찾아 올 정도로 국제적 휴양지로 자리잡았다.
새벽 2시10분 사이판 공항에 내려서자 무덥고 칙칙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김포공항 국내선청사 규모의 사이판 공항청사에는 안내 데스크도 없어 렌터카 센터가 관광안내를 대행하고 있었지만 청사와 따로 떨어져 있어 쉽사리 찾기도 어려웠다. 호텔과 공항을 오가는 버스는 새벽이라 아예 끊겼고 택시도 1, 2대만이 대기하고 있어 여행사를 통해 오지않은 관광객들은 우왕좌왕했다. 관광안내소는 물론 도로의 이정표도 거의 없어 렌터카 이용객은 여기저기 물어봐야 간신히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투어」가 대부분인 시내관광은 몇개소를 들러 보는 것으로 끝났다. 징병이나 군대위안부로 일본군에 끌려왔다가 희생된 한국인을 추모하는 위령탑, 3,000여명의 일본군이 할복후 투신했다는 만세절벽, 800여종의 새들이 모여산다는 새섬 등이 전부였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사령부 건물도 관광코스에 들어 있었지만 모두 한나절이면 끝날 정도였다.
그대신 맑은 연녹색의 바다와 여기서 이뤄지는 각종 해양레포츠는 사이판을 「아시아의 하와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했다. 해안을 따라 끝없이 뻗어있는 새하얀 모래밭은 유난히 부드럽고 얕은 수심, 강렬한 태양빛과 어우려져 해수욕을 즐기려는 관광객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물안경을 끼고 물속에 들어가면 수백종의 열대어와 형형색색의 산호가 장관을 연출한다. 투명한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배와 연결된 헬멧을 쓰고 바닷속을 거니는 「수중산보」는 사이판 관광의 백미로 통한다.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을 상품화하는데 기울인 노력도 느껴졌다. 우선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레포츠가 싼값에 제공된다. 요트 카누 수중산보 패러세일링 윈드서핑 스카이다이빙 제트스키 바다낚시 등을 고르기만 하면 호텔에서 웬만한 장비를 염가에 대여하면서 주선해 준다.
호텔 쇼핑센터 식당 유흥가에서도 관광객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20여개의 관광호텔에는 각종 부대시설과 외부시설과의 연결체계가 갖춰져 있으며 관광객의 70%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언어소통에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한국 식당만도 20군데가 넘고 호텔 주변에 밀집한 술집 노래방 나이트클럽 등도 3개국어 간판을 내걸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휴가차 동생과 함께 왔다는 최모(25·여·회사원)씨는 『사이판은 처음 왔지만 제주도보다 물가도 싸고 서비스도 더 좋은 것 같다』며 『무엇보다 호텔이 해안과 시내 중간에 위치해 있어 해수욕과 쇼핑 등 모든 것이 편리하다』고 말했다.<사이판=염영남 기자>사이판=염영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