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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베끼기/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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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베끼기/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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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투고를 정리하다보면 「이런 일도 있었나」싶어 새롭게 깨우치는 때가 많다. 그들은 흔히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을 날카롭게 집어내 시비를 가리고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곤 한다.이러한 독자의 글은 매끄럽지는 않더라도 진솔하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한 질책은 종종 거칠고 직설적이며, 에세이도 감상을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투는 투박해도 은연중에 그들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이 이런 글의 묘미이다.

그러나 가끔은 절망적인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매끄러운 글솜씨에 어디선가 본듯한 논조, 하자는 없지만 상투적인 주장…. 남의 글을 짜깁기한 것이다. 이런 글은 신문기사의 몇대목을 적절히 재구성한 경우가 많다. 단어 몇개를 바꾸거나 어미를 변화시키는 것 외에는 그대로 베낀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이슈가 부각되면 어김없이 이런 종류의 글이 날아든다. 어쩌면 이리도 다방면에 관심을 쏟을 수 있나 싶게 여러 분야의 문제에 놀랄만한 식견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또 각각의 사건에 대한 개요와 적절한 톤의 논평 등을 갖춰 한 건의 기사로서도 손색이 없다.

겉은 매끄러워도 이런 글에서는 곰팡내가 난다. 진지한 성찰이나 독창적인 생각, 혹은 그만이 느끼는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선의로 해석하자면 기왕 나온 기사와 생각은 같으나 글로 표현하기가 난감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남의 글을 무단으로 빌리는 것은 엄연한 범죄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한 행위이며 또한 동료독자들에 대한 기만이기도 하다.

큰 죄책감 없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것은 비단 「글 베끼기」뿐은 아닐 것이다. 옳지않은 일도 자주 반복하면 가치판단이 흐려진다. 거리에 침 뱉기나 꽁초 버리기, 무단횡단 등은 캠페인을 벌이고 단속을 강화하기 전에는 단순히 나쁜 습관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사회적인 행위라는데 공감이 이뤄지고 있는 듯 하다. 『다들 그러는데 뭘…』하는 체념은 무책임하다. 『나부터라도…』하는 살아있는 자존심으로 사회의 건강성을 되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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