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기술 부족 고장땐 엄청난 위기미국과 핵무기 경쟁을 벌여온 러시아가 최근 전략핵무기 통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고르 로디오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2월 핵무기 통제상의 위기를 처음으로 제기했으며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략 로켓부대 첩보부 및 중앙지휘소를 점검한 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시사주간지 「오고뇩」은 최신호에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유사시 핵무기 발사를 명령하고 이를 수행할 전력핵 자동통제 시스템인 「카즈베크(카프카스지역의 산이름)」도 위기를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체마단치크」로 불리는 핵가방이 고장나 작동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로서는 대처방법이 없다는 것.
옐친 대통령의 심장수술 당시 누구의 손에 들어갈 것이냐를 놓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던 핵가방은 「카즈베크」의 핵심이다.
007가방을 연상케 하는 체마단치크는 검은 제복 차림의 러시아 해군장교(오페라토르)가 휴대하고 24시간 대통령의 뒤를 따라다닐 만큼 국가안보의 상징이다.
문제는 83년 첫 등장한 카즈베크의 수명이 다했다는 점이다. 옐친 대통령이 진짜 핵가방이 아니라 가짜 체마단치크를 들고 다닐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매일 핵가방의 작동유무를 점검해야하나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거의 챙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큰 문제는 카즈베크를 현대화하거나 바꾸는 데 필요한 기술력과 자금이 없는 것이다.
카즈베크를 개발한 핵연구소는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렀고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 세상사람이 아니다. 현재 관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도 없다.
따라서 러시아는 주요 부품을 수입,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핵실험에 사용될 슈퍼 컴퓨터의 러시아 판매를 금지해 온 미국이 핵심 부품을 선뜻 러시아에 넘겨줄 지 의문이다. 러시아의 핵가방이 고장날 경우 누가 수리할 것인가. 러시아 핵위기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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