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일에 치여 주말도 회사에서 ‘봉사’/맞벌이 딘트족 “일요일은 자는 날”/“자주 못가니 한번에 화끈하게”/스키·해외여행 등 휴가 고급화서울의 한 건설회사 대리 최모씨(36). 입사 7년째인 최씨는 최근 6개월 사이에 일요일을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난 해 가을 팀장으로 승격하면서 연말결산에다 새해 업무계획작성 등으로 일 부담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평사원일 때 최씨는 휴일은 가족과 함께 즐긴다는 원칙을 꼬박꼬박 지켰다. 부인(32)과 아들(4)을 승용차에 태우고 광릉이나 양평, 양수리 등 서울 근교로 나들이도 하고 주말에는 시내에서 외식도 하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팀을 이끌게 되면서부터 최씨는 책임감 때문에 일요일도 거의 빠짐없이 회사에 출근한다. 게다가 새해 들어서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당뇨가 심해 혹 쉬는 날이 생기면 고향집에 내려가야 했다. 때문에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경제개발의 풍요를 맛보면서 성장한 30대는 휴식과 여가에 처음으로 눈을 뜬 세대이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도시 근교로 나들이도 하고 가끔 외식도 하면서 생활의 여유를 즐기는게 일상화했다. 여가를 모른채 일에만 매달려온 50대, 그들의 사고방식을 답습한 40대와는 달리 30대는 일보다는 삶의 질을 추구하고 여가를 즐기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만큼 여가생활이 쉬운 것은 아니다.
제일기획이 지난 해 전국의 남녀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소비자조사에 따르면 30대(조사대상자 1,500명)의 50.4%가 「수입을 위해 일을 더하기 보다는 여가시간을 갖고 싶다」고 응답했다.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40대는 42.7%, 50대는 39.5%였다. 일 때문에 여가를 즐길 시간이 부족한 30대의 자화상을 이 설문조사는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산에서 살고 있는 맞벌이 부부인 김모씨(33)부부에게 일요일은 잠자는 날이다. 둘이 벌기 때문에 금적적인 여유는 있지만 일에 치어 여가를 즐기기 보다는 쉬는게 우선이다. 부인이 임신을 한 넉달전부터는 멀리 나들이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김씨부부에게는 일요일 하오에 비디오를 빌려보거나 근처 할인점에서의 쇼핑, 외식을 하는게 여가의 전부다.
이래서 등장한 신조어가 딘트(DINT·Double Income No Time)족. 김씨 부부처럼 여가를 위해 쓸 돈은 준비되어 있으나 시간이 없는 30대 맞벌이 부부들을 일컫는 말이다. 딘트족은 우리나라 30대 맞벌이 부부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30대의 여가생활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갖기 시작하는 30대 초반에는 여가생활이 가족단위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일보다는 가정을 더 중시하는 사회분위기와 핵가족화 추세 또한 가족위주의 여가생활을 정착시킨 주요 원인이다. 자가용의 보편화는 핵가족 단위의 여가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다.
서울 시내나 근교의 놀이공원에는 휴일이면 자녀를 데리고 나온 30대를 많이 볼 수 있다. 어린 자녀 때문에 먼길을 떠나자니 그렇고 극장이나 공연장 등 부부만이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을 찾기도 부담스러운 30대 부부들에게 놀이공원같은 곳은 차라리 마음 편한 곳이다. 가족단위로 외식이나 쇼핑을 하는 것도 여가생활의 주요 품목이 됐다. KFC나 햄버거가게 피자집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이 성업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20대에게 인기있는 패러글라이딩, 스킨스쿠버, 스노클링, 윈드서핑, 산악자전거 등 모험적인 신종 레포츠가 30대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아내와 어린 자녀들과 함께 모험적인 스포츠를 하기에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30대의 「휴가」는 고급화할 수 밖에 없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왕하는 것 화끈하게 하자」는 것이 30대의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30대가 사치해서라기보다는 평소 여가라고는 없는 자신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와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키와 해외여행. 스키와 해외여행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하면서도 시간이 부족한 30대들의 레저욕구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 년사이에 급증한 스키인구의 주류는 단연 30대다. 회사원 박병한(38)씨는 지난 겨울 주말마다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딸과 함께 서울 근교의 스키장을 찾았다. 박씨는 『장비를 마련하느라 16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지만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은 30대들이 가장 선망하는 여름휴가 메뉴. 신혼여행을 해외로 다녀온 첫 세대인 30대는 언제라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갖춰져 있다. 한주여행사 민대식 주임은 『가족단위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4쌍중 1쌍이 30대』라면서 『대개 여름휴가 일수가 1주일 가량이기 때문에 4박5일정도 코스인 괌 싸이판 태국 하와이 등이 30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여가를 갖고자하는 30대의 욕망은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소 경제적 출혈이 있더라도 인생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과 현실사이에서 30대 후반이 되면 그들의 여가생활은 자연스럽게 40대, 50대를 닮아간다. 집사느라 빌린 은행 대출금을 갚고, 오르는 전세값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사교육비를 충당하느라 더욱 쪼들린다. 여가생활을 할 「여가」가 사라지는 것이다. 회사원 김우호(36)씨는 『사회가 워낙 비효율적인 구조이다보니 일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일을 하면서 여가도 즐길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남경욱 기자>남경욱>
◎레포츠부부/김경엽김영경씨/“여가위해 아이도 미뤘죠”/결혼후 함께 스포츠클럽 가입/일요일마다 스키·승마 등 즐겨
『부부가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다는 것만큼 좋은게 있나요. 아이는 나중에 가질 생각입니다』
지난해 결혼한 아주건설 업무팀 부장 김경엽(33)씨와 부인 김영경(26)씨는 여가생활을 위해 출산까지도 미루고 있는 극성 레포츠부부다. 김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50여만원의 입회비를 내고 1년내내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클럽에 가입했다. 교통비조로 1만원 정도만 추가로 부담하면 주말마다 준비된 레저프로그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동안 이 스포츠클럽을 통해 수영과 스키 승마를 배웠다.
휴일이면 잠만 자는 남편을 집밖으로 「유혹」한 것은 아내였지만 지금은 남편이 더 적극적이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긴 해도 일단 야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주일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린다. 몸은 피곤해도 머리와 정신은 상쾌하다. 남편은 술과 담배도 끊었다. 결혼한 지 1년이 됐지만 아이는 없다. 스포츠클럽에 가입할 때 당분간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는 자신들만 레저에 몰두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부인 김씨의 형부 박태원(35·컴퓨터프로그래머)씨와 언니 김영옥(29)씨 부부에게도 이를 권했다. 그래서 지금은 주말마다 두 부부가 함께 레포츠를 하러 다닌다.
박씨 부부는 15개월된 아들 이수군이 있지만 외출때마다 가족들에게 맡길 수 있어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김씨는 『이번 주는 시댁에, 다음 주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니 평소 안찾아가던 어른들을 자연스럽게 뵐 수 있어 오히려 좋다』며 『시간이 없다거나 아이 때문에 여가생활에 제약을 받는다는 건 핑계』라고 말했다.<박일근 기자>박일근>
◎30대의 여가생활/잠TV보기 1·2위
30대들은 여가생활의 대부분을 잠자기와 TV보기로 소일하고 있다.
통계청이 93년 전국의 3만2,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통계조사」에서 「주말이나 휴일의 여가는 주로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30대의 45.4%가 「수면 및 가사 잡일」을 꼽았으며 「TV 시청」이 23.4%로 두번째였다.
3위는 등산 낚시 야유회 공원방문 등 「스포츠 및 여행」(18.4%)이었으며 다음으로는 장기 바둑 화투 전자오락 등 「잡기 및 승부놀이」(3.9%), 독서 회화 서예 사진촬영 등 「창작적 취미 오락」(2.8%), 영화 연극 오페라관람 음악감상 등 「감상 관람」(2.7%) 등이었다.
여가생활 1위를 차지한 수면 및 가사잡일은 남자의 경우 36.1%에 그친데 반해 여자는 무려 55.2%였다. 남자의 여가생활 2위는 스포츠 및 여행이었고 3위는 TV시청이었다. 이에 비해 여자는 2위가 TV시청이었고 스포츠 및 여행은 3위였다. 이같은 통계는 30대 여자들이 가사와 육아 등으로 인해 여가생활에서 적지않은 제약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남경욱 기자>남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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