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경제정책의 ‘위기’/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한국논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경제정책의 ‘위기’/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한국논단)

입력
1997.03.27 00:00
0 0

◎신경제팀 긴축전략/자본수요·구매력 결빙/시장침체 촉발 위험/장기적 재정정책 필요신경제팀이 또 다시 위기관리정책을 발표했다. 정부예산을 축소하고 한계기업의 도산을 유도하여 효율적 시장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다시 말해 긴축을 통한 경쟁력 회복전략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위기의 원인은 여럿이지만 경쟁력 제고에는 정치 및 사회부문과의 종합적 조율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는 점에서 경제부문만의 독립적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긴축정책은 자본수요와 구매력을 결빙시켜 오히려 시장침체를 촉발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고 정치에 기대를 걸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사회부문의 활력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영역에서라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단기적 「통화정책」보다는 금융시장 활성화와 건전한 소비를 유도하는 장기적 안목의 「재정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조치로 생각된다. 한계기업의 과감한 정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의욕적이고 유망한 중소기업마저 자본궁핍과 구매력 하락에 시달리고 경제위기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시장개방과 무한경쟁이 정부의 정책개입력을 약화시키는 상황에서 경제관료들은 흔히 통화정책에 의존하게 된다. 더욱이 시장활성화를 명분으로 규제를 일삼는 한국의 경제부처와 경제관료들이 다른 방도를 고안해낼 것으로 기대하기란 어렵다.

소비억제를 위하여 에너지비용을 턱없이 올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예산의 긴축을 단행한다. 긴축이 물가앙등을 어느 정도 상쇄시킬 것인가도 의문이지만, 이 과정에서 실질소득에 타격을 입는 서민의 가계와 국내수요의 급격한 결빙은 고려되지 않는다. 임금생활자의 근로욕구가 충만하지 않은 채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며 자본이 제대로 조달되지 않는 곳에 기업은 번창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통화량의 조정에만 비중을 두는 정책패키지가 최선의 처방이라 믿는 것은 중대한 오류이자 환상이다.

정부는 「규제완화」와 「적절한 개입」을 혼동하고 있다. 시장은 제도의 복합체이다. 표백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의욕적 경제행위의 발목을 잡는 쓸데없는 규제가 많은 반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자본흐름을 유도하는 효율적 재정정책이 빈곤하고 공익에의 기여를 최고의 보람으로 삼는 근로정신이 현격히 퇴색하였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신경제팀의 긴축정책은 자본을 오히려 비생산적 부문이나 투기행위로 이동시켜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저해할 위험을 내포한다. 「비효율 고비용」이 위기의 주범이라는 데에 대하여는 대체적으로 동의가 이루어져 있지만 그에 대한 경제관료의 처방은 일관성이 없다.

수요창출과 기술개발을 위한 적극적 투자와 산업정책은 필요한 반면, 그것을 명분으로 한 정부의 이권챙기기와 렌트추구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후자가 바로 「규제완화」의 영역인 반면, 전자는 투자유인책과 인적자원 중심정책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적극적 철회와 적극적 개입이 동시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생산부문과 노동시장에 대한 적극적 유인책이 필요한 시점에 긴축이라니. 긴축은 인플레를 가장 두려워하는 통화론자들이 책임회피용으로 즐겨쓰는 고전적 처방이다. 국제수지적자와 악성 외채가 기업을 괴롭히는 동안 정부는 소비억제와 인플레의 부담을 임금생활자에게 전가시키고 흑자살림을 꾸리겠다는 의도로 읽혀지는 것이다.

예산긴축이 아니라 「적자재정」을 편성해서라도 기술투자와 생산성향상을 꾀하여야 한다. 2조원을 아낄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서라도 유망한 기업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국내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한계기업의 도산으로 늘어나는 실업자의 인적자원을 생산력과 재결부시키는 노동시장정책을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 긴축과 한계기업 정리로 인플레와 예산낭비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결핍과 실업불안 심리로 인한 근로의욕의 위축과 그로부터 촉발되는 임금생활자의 「집단적 탈출」은 통화론자들의 처방을 넘어선다. 더 늦기 전에 경제정책의 전면 수정을 요구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