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거래·설비 도입가 조작에 초점/“캐다보면 정·관·금융계 로비자금 나올듯”검찰이 다시 한보의 비자금 뒤지기에 나섰다. 대검 중수부는 25일 한보그룹 재정본부 관계자들을 소환, 한보측이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와 사용처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이 한보비자금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한보대출비리와 김현철씨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1차수사 당시 시간에 쫓겨 황급히 마무리지었던 한보비자금을 원점에서부터 재조사하려는 듯하다. 특히 검찰은 김현철씨가 한보철강의 설비도입과정에서 2천억원의 리베이트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상 한보측이 사용한 「은행돈」의 흐름을 정밀 추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검찰이 1차 수사때 밝힌 한보 비자금은 2천1백36억원. 한보측은 금융기관 대출금과 사채등으로 5조5백59억원을 조성해 시설자금으로 3조5천9백12억원을 사용하고 운영자금으로 1조2천5백11억원을 투입, 차액 2천1백36억원을 유용했다는 것. 정총회장은 2천1백36억원중 ▲계열사인수에 4백37억원 ▲임직원 영업지원비로 2백74억원 ▲전환사채 인수에 8백20억원 ▲해외진출경비로 55억원 ▲전처 위자료로 40억원 ▲부동산 구입 및 세금납부에 2백29억원을 사용, 차액 2백50억원중 상당액이 뇌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조차도 이러한 한보비자금 내역서가 실체를 규명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통상 횡령사건은 장부를 맞춰 차액을 규명하는 것인데 장부 자체가 대부분 조작됐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조사결과 정총회장은 「한보상사」를 비자금창구로 삼아 계열사간 자금이동이나 어음할인 등으로 조성한 자금을 한보상사에 대여하거나 대여금을 회수하는 「한보식」 회계처리를 해왔다. 장부에 기재된 계열사간 자금 입출금내역이 실제로 있었는지 아니면 허위기재한 것인지는 돈줄을 틀어쥐고 매일 결재도장을 찍었던 정총회장만이 알 수 있다는 것. 결국 지난번 수사에서 검찰은 「조작된 장부」를 들고 재정본부 직원들이 맞춰주는 자금내역서를 토대로 비자금에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간에 쫓겨 면밀한 자금흐름 추적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과도 있었다. 정총회장은 94년부터 이같은 회계방식의 처리와 비자금조성을 위해 「채권·채무관리팀」까지 만들어 운영한 사실이 확인됐다. 채권·채무관리팀은 공사비와 노무비 과다계상 등 고전적 방법은 물론 계열사간 부동산 거래를 부풀리거나 주식거래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정총회장이 돈이 필요하면 「아산만 공사비」나 「한보상사 대여금」형식으로 인출하는 등 한보식 비자금 조성과 사용법의 윤곽을 대부분 파악한 것.
검찰의 수사는 한보가 5조원의 자금을 어디에 썼는지를 규명해 전체 비자금 규모를 파악하고 비자금의 사용처를 면밀히 훑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정총회장이 제철소 설비 도입가를 조작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다. 검찰의 한보수사결과 발표문에는 숱한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설비수입가에 대한 조사결과를 찾을 수 없다. 당시 수사팀은 외국업체가 관계된 리베이트거래나 설비가 조작을 통한 자금조성문제 등에는 애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새 수사팀은 비자금의 사용내역을 추적하다 보면 한보의 정―관―금융계 로비자금의 막힌 통로가 한꺼번에 뚫릴 수도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이태희 기자>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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