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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의 봄 소식(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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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의 봄 소식(정달영 칼럼)

입력
1997.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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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보낸 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행사안내서 같은 소책자의 첫 페이지 소제목이 「헤이그의 봄소식」이다. 발신자는 재작년 헤이그에 「이준열사기념관」을 세우는데 헌신했던 그곳 교포 이기항씨.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 대표이고, 『동포여 평화합시다』를 주창하는 평화운동가다.소책자는 그 내용이 「만국평화회의 및 이준 열사 순국 9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행사를 위한 꼼꼼한 비망록이다. 올해를 한반도 평화의 원년으로 정해서 「7,000만의 평화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게 하자는 호소와 그 실행계획들이 담겨있다. 1907년 평화도시 헤이그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과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취되지 못한 한반도의 평화를 성찰하는 대목들은 자못 감동적인데가 있다.

「감자와 평화」라는 글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러가지 계획과 의제들 가운데 하나를 제기한 수필 형식이다. 북한의 식량사정을 전하는 비참한 내용의 보도들을 보다가 그는 「감자의 나라」인 네덜란드의 『값싸고 맛있는』감자를 생각한다. 대만 핵쓰레기의 북한 반입저지운동을 펴고 있는 녹색연합 장원 사무총장의 그린피스 네덜란드 본부 방문에 동행했던 그는 문득 『핵쓰레기 배 대신에 감자 배를 먼저 보내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평화의 감자를 북한동포들에게」는 이렇게 해서 이준 열사 순국 90주년 기념행사로 성안되었다.

「평화의 감자」는 우선 이준열사의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에 사는 주민들에게 보낸다는 것이 목표다. 20㎏ 한 푸대에 현지인도 가격이 미국돈 5달러. 보관 및 운송의 난점 때문에 가공한 감자가루로 할 때는 25㎏ 한 푸대에 30달러가 든다.

소책자의 마지막 페이지 소제목은 「조국이여 평화하라」다. 그는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동포들에게는 크나큰 비극이지만 남한과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게는 「기회」임을 역설한다. 그가 믿기로는 「평화는 나누는 것」이며, 북한동포들에게 식량을 보내는 것은 민족화해의 길을 닦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는 현실이 너무 차갑기 때문에 이 계획의 실현이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주의가 최선의 현실주의」임을 믿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북한 당국의 여러 행태로 보면 국민감정이 허락하지 않는 데가 분명히 있으나 지금은 감정을 말할 단계가 지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당장 굶어죽어가는 동포들의 소식이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는데도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우선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쌀을 보내주면 군량미로 사용되고 그런 점에서 안보의 문제가 된다면 군량미로 적절치 않은 대용식품이라도 보내는 것이 옳고, 대용품이라면 미국의 옥수수나 네덜란드의 감자가 가장 적합하다.

3월들어 북한의 식량난을 전하는 보도들은 「버려진 어린이들의 시체가 길가에 뒹굴고 있다」(더 타임스 3월18일자)는 수준이다. 17일 평산발 전송사진의 설명은 「영양실조로 머리색깔이 엷어진 북한 어린이」로 되어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쓰레기터 주변에서 먹을 것을 찾아헤매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는 목격담, 「신의주 사람들은 먹을 만한 풀과 음식을 구하러 산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보도, 「이달말이나 늦어도 다음달에는 식량이 고갈될 것」이라는 북한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한 세계식량계획(WFP)사무국장의 북한방문담, 「85년의 에티오피아 기아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세계기독교협의회(WCC) 아시아국장의 회견 등 믿을 수도 안믿을 수도 없는 「참상」이 잇달아 전해진다. 이런 전문들을 확실하게 「반증」한 보도가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것으로 알려진 비공개연설문.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길가에 쭉 늘어섰습니다』 『오늘 식량문제로 하여 무정부상태가 조성되고 있는데도…』 『지금 인민군대에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고 하는 그의 연설에는 북한의 비극적인 식량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제는 우리의 시각이다. 그야말로 냉혹하게 북한의 현실을 보고 판단할 필요가 절실하다. 한보사건과 대통령아들의 문제가 절박하고 위험한 우리의 내부상황인 것과 똑같이, 북한의 식량상황은 더 절박하고 위험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 「7,000만의 평화」를 깨는 더 큰 위기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바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본사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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