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속셈은 뭘까/동북아 질서재편 ‘현장조사’미 정계의 고위 지도자들이 한국을 비롯한 아·태지역의 주요 국가들을 상대로 펼치는 초당외교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일행은 26일 상오 2박3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홍콩으로 떠난다. 이어 일본을 거쳐 중국을 방문중인 앨 고어 부통령이 28일 방한할 예정이다. 그 중간에 테드 스티븐스 상원 세출위원장 일행이 26일부터 2박3일동안 서울에 온다. 미국정계 거물들의 잇단 아시아 순방이 사전에 상호 조율된 흔적은 없다. 고어 부통령의 중국방문 일정은 지난해부터 잡혀 있었다. 여기에 부활절을 전후해 휴회에 들어간 의원들의 한반도 방문일정이 공교롭게 겹쳐 방한 러시를 이루게 됐다.
공화, 민주 양당의 공통된 아·태지역 중시정책이 반영된 이들의 아시아지역 나들이는 그러나 시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덩샤오핑(등소평) 사후 불투명한 중국의 장래, 7월1일로 예정된 홍콩반환, 불확실한 남북관계 및 대만의 미래 등 새로운 지역질서의 재편과정이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의 「현장조사」활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국한시켜볼 때 북한에는 식량난이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고 한국에는 부패 스캔들로 인해 정정불안의 기운이 높아가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식량 공급원인 한국이 한보 스캔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상황을 특히 우려한다. 한국정부가 어떤 이유에서건 대북 식량지원에 속수무책인 상황을 그들은 무턱대고 좌시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핵합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4자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도 그렇다.
따라서 이번에 방한하는 미지도자들은 대북한 지원에 관한 한국측의「정치적 여유」를 탐색하는 한편, 한국측이 남북대화의 이니셔티브를 잡는다는 측면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지렛대로 활용토록 권고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오공단 박사는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여부가 4자회담의 성사나 북 핵동결에 필수적이라고 믿고있다』면서 『미 행정부는 미공법(PL)480을 통한 식량원조에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한국측에 대북지원을 완곡하게나마 권고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북·미 핵합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온 공화당측의 수장인 깅그리치의 방한도 흥미롭다. 지난해 의회 윤리규정 위반으로 곤욕을 치른 상태에서 인기만회를 위한 돌파구를 모색해오던 깅그리치는 한반도 안보문제가 미 언론의 지대한 관심사로 다시 부각되기 시작하자 외교지도자로서의 이미지 부각작업에 나서게 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그의 심중을 정확히 읽고있는 한국계 김창준 의원이 이번 방한을 성사시키는데 주된 역할을 했다.
서울의 어수선한 정국 분위기를 모를리 없는 이들 미 지도자들은 가능한한 조용하게 방한일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의 국내사정을 감안해 대북식량지원과 시장개방등 그들의 요구사항을 생략한 채 서울을 떠나리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커다란 오산이 될 것이다.<이상석 기자>이상석>
□‘순방’ 맞는 한·중·일 3국 입장
◎한국/4자회담 등 한반도안정 미 역할 강조
정부는 뉴트 깅그리치 미 하원의장 일행을 비롯해 테드 스티븐스 상원세출위원장, 앨 고어 미 부통령의 방한이 줄을 잇는 것을 대미외교의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정부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하원의 대표단이 민주당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수행에 유일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현장의 분위기와 우리정부의 입장을 가감없이 전달하는데 우선 주력할 방침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하원의장으로서는 71년 앨버트 의장의 방한 이래 26년만에 방한한 깅그리치 의장 일행을 맞는 태도에 잘 반영돼 있다.
깅그리치 의장 일행은 25일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 오찬을 함께 했고 이에 앞서 유종하 외무장관과 30여분간 만났다. 깅그리치 의장은 유장관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부친인 로버트 깅그리치씨가 한국전에 참전한 사실을 거론해가며 한미방위공약이 확고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공화당의 전통적 한반도정책을 재강조했다.
깅그리치 의장은 이와 함께 최근 북한의 대미접근이 한미 이간책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지적한 뒤, ▲대한안보공약의 재확인 ▲남북대화 재개 촉구 ▲북한의 한·미 이간 책동 차단 등 3건의 의회결의안 추진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최근 북한 상황이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망명과 식량난 등으로 극히 유동적이라고 설명한 뒤 북한이 4자회담이나 남북대화를 통해 평화공존의 무대로 돌아오는 것이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정부는 북한의 식량 및 경제난은 평화공존차원의 남북협력을 통해서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4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회신을 기대하는 입장도 전달했다.
정부는 또 깅그리치 의장이 지난 23일 대만핵폐기물 북한 이전의 부당성을 강도 높게 언급한 점과 관련, 4월2일 대만 방문시 협조를 요청했다. 외무부 당국자는 『깅그리치 의장 일행은 이 문제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대만측에 전달키로 했다』며 『대만도 미국내 최대의 지지세력인 의회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장관은 우리의 현안인 미국비자면제문제와 관련, 의회의 입법조치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깅그리치 의장은 김창준 의원 등이 제출한 비자면제법안(HR 203) 등을 수렴해 이번 봄회기 내에 적절한 시험프로그램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28일 방북에 앞서 방한하는 스티븐스 상원세출위원장 일행과 고어 부통령에게도 이같은 기본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다.<장인철 기자>장인철>
◎중국/홍콩반환 지렛대로 양국긴장 완화
2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중인 앨 고어 미 부통령은 89년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 이후 중국을 방문하는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다.
이번 고어 부통령의 방중은 연말과 내년초에 있게될 양국 정상 교환 방문의 길을 닦는다는 의미외에 천안문사태 이후 일련의 앙금을 해소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중·미간에는 현재 대만문제, 인권갈등, 12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불균형, 지적재산권, 핵기술 이전, 홍콩반환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중국의 대미시각은 「협력과 경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기술과 자본공급은 받아야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문제를 지렛대로 미국이 중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 최근 불거진 이른바 「차이나 커넥션」이 미국내에서 반중 정서를 확산시킬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이는 중·미관계개선을 저해하려는 미국내 친대만세력의 모략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중국은 공화당 소속의 뉴트 깅그리치 미 하원의장이 고어 부통령의 뒤를 이어 중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대만을 찾는 것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중국은 그러나 미국에 대한 중요한 지렛대를 갖고 있다. 그것은 7월1일의 홍콩 주권반환이다. 사실 미국은 7함대의 군수지원을 홍콩을 통해 받아왔다. 홍콩주권의 중국귀속 이후 3만7,000여 홍콩거주 미국인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베이징=송대수>
◎일본/군기지 연장·무역역조 등 현안 조율
최근 미·일관계에서 가장 큰 현안은 주일 미군 기지의 계속적인 사용여부와 미군감축 등에 관한 논의다.
95년 9월 오키나와(충승)에서 주일미군 병사 3명이 여자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후 일본에서 미군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를 계기로 오키나와 주민은 미군기지의 폐해 등을 열거, 올해 5월이면 사용기간이 끝나는 기지의 재계약 거부와 주일미군의 감축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주일미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정권도 지금 수세에 몰려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다시 늘어가는 일본의 무역흑자 기조가 양국간의 무역마찰 재발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본 대장성의 무역통계 발표(통관 기준)에 따르면 2월의 무역흑자가 전년 동기에 비해 6.5%, 6,867억엔 증가했다. 미국정부는 일본의 흑자확대를 강하게 비판하며 일본의 내수증가와 대외흑자의 재확대를 방지하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같이 삐걱거리는 양국관계는 미국에 있어서도 분명히 부담이 된다. 따라서 한반도 정세등 이 지역의 안보와 제문제에 대한 양국의 공동 보조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도쿄=박영기 특파원>도쿄=박영기>
◎깅그리치 수행 김창준 미 하원의원/“방한목적은 한·미 동반관계 재확인/한국인 비자면제법안 통과 확신”
뉴트 깅그리치 미 하원의장을 수행하고 방한한 김창준 하원의원(캘리포니아주·공화)은 25일 『하원의장이 재선된 이후 첫 해외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한 의미를 평가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날 하오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가진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공화당을 주축으로 한 의회 대표단의 주된 방한 목적은 한미 양국간의 동반자 관계가 확고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방한 목적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4자회담 개최문제와 대만 핵폐기물의 대북 반출 문제, 한국인에 대한 미 입국비자 면제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미 의회는 4자회담이 기필코 실현돼야 한다는 입장 아래 남북한간 직접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해 행정부측도 의회와 일치된 견해를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만 핵폐기물 반출 문제에 대한 미 의회 입장은.
『당초 계획에는 없었으나 강력한 여론에 따라 대만 일정을 하루 추가했다. 대북 핵폐기물 반출에 대한 미국의 거부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측의 반대 입장은 분명하다. 폐기물의 북한 반입을 강력히 저지한다는 것이다. 25일 상오 청와대를 방문한 깅그리치 의장도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러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대만측도 생각을 달리할 것으로 본다』
―비자 면제시험제도를 구체적으로 밝혀달라.
『한국인에 대해 시험적으로 미국입국 비자를 면제해달라는 법안을 제출했는데 지난해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올 여름안에 법안의 통과를 확신한다』
―공화당측의 대북 정책기조는.
『군사 위협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한반도에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인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상대방이 워낙 비이성적 집단이라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 식량난에 대한 미국 정부 차원의 쌀지원이 예상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미국의 전통에 비춰 의회측이 정부 지원안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규모면에서 행정부측의 요구를 다 받아 들일 지는 의문이다』
―의회대표단의 순방일정이 앨 고어 부통령의 아시아 방문 일정과 유사한데.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윤석민 기자>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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