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실버문화가 바뀐다/“자식농사가 최고 노후설계” 옛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실버문화가 바뀐다/“자식농사가 최고 노후설계” 옛말

입력
1997.03.25 00:00
0 0

◎“돈 있어야 대우” 상속 최대한 늦추고/자식과 따로 사는 노인세대가 53%/아예 전원주택촌·실버타운 입주도/취미·레저 즐기며 제2인생 출발/‘퇴물’이 웬말 다시 취업 나서고/PC통신 원로방·‘NO노클럽’ 등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홀로되면 재혼하겠다” 50%노후의 생활양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자식농사가 최고의 노후설계」라는 얘기가 옛말이 된 대신 능력있을 때 저축을 하고 은퇴후에는 부부끼리 지내는 새로운 노후설계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제2의 청춘을 즐기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덤에 갈 때까지 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노령층에 확산되고 있는 것. 사업자금을 대 주거나 집을 사 주려고 자식에게 일찌감치 재산을 넘겨 줬다가 최소한의 노후생활 기반마저 잃어 버리고 후회하는 노인들이 늘면서 상속은 최대한 늦게 해야한다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 「내돈이 자식돈이고 자식돈이 내돈」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퇴직금을 받기 보다는 연금생활을 하면서 자식과 따로 살겠다는 것이 50, 60대의 지배적인 생각이고 노후를 대비해 국민연금이나 노후보장보험 등에 가입하는 40, 50대도 크게 늘었다.

전직공무원 이(72)모씨는 『퇴직금으로 자녀들의 결혼자금과 주택자금을 마련해 주고 나니 아파트 한채와 3,000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며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고 살려니 눈치도 보이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비참한 기분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자식에게도 대우 받는다』는 것은 그만의 지론이 아니다.

이같은 경향을 입증하듯 자식과 떨어져 혼자 또는 부부끼리만 사는 노인단독세대가 최근 크게 늘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에 따르면 75년 7%에 불과하던 노인단독세대가 90년 23.8%, 96년에는 53%로 크게 늘어났고 자식과 함께 사는 가구는 39%에 불과했다. 이유는 「따로사는 것이 편해서」(35%), 「건강할 때까지 독립해 살고 싶어서」(15.7%), 「자녀가 불편해 할까 봐」(20.8%) 등의 순이었다.

자식들과 가까이 살면서도 가사는 따로따로 하는 「신 대가족제」도 등장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권병례(65·여)씨는 『며느리 눈치가 보여 4년전부터 큰아들을 부근에 분가시키고 따로 살고 있다』며 『슬하의 4남매가 한 동네에 모여 살며 자주 왕래하니 외로움을 덜 수 있고 함께 살 때의 불편도 없어져 오히려 낫다』고 말했다.

친구나 직장동료들끼리 전원주택촌을 형성해 모여 사는 사람들도 있다. 경기 광주군에는 대학교수 18명의 공동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관리인 임정진(60)씨는 『현직교수들의 경우 강의 때문에 주말이나 휴일에만 이곳을 찾지만 은퇴한 교수들은 부부가 함께 정원과 채소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즐긴다』며 『생각이나 생활수준이 비슷해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고 말했다.

자식과 떨어져 아예 실버타운에 입주,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도 많다. 수원에 있는 실버타운 「유당마을」의 조(72·여)모씨는 『혼자 사는 것이 편해 자식을 설득, 이곳에 입주했다』며 『운동도 하고 여가 프로그램도 많아 오히려 즐겁고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후생활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더이상 집안이나 노인정에서 무기력하게 노년을 보내기 보다는 취미와 레저, 여행을 즐기고 취업과 사회봉사 활동으로 노년을 보내는 신세대 노인들이 늘고 있다. 노인대학에는 영어 글쓰기 춤 노래 등을 배우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노인들이 가득하다. 서울 마포구 서울노인대학에 다니는 서명순(71·여)씨는 『이곳에서 동년배들과 영어도 배우고 운동도 하니 몸도 아프지 않고 훨씬 젊어지는 느낌』이라며 『남편을 설득해 다음달부터는 함께 다닐 계획』이라고 즐거워했다.

최근엔 실버여행도 인기다. 해외여행객의 70%가 50, 60대 중·노년층이며 개중에는 젊은이들과 똑같이 배낭여행을 떠나는 노인들도 있다. 1년전 자식을 분가시킨 김태흥(69·여)씨는 『저축한 돈으로 남편과 동남아,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퇴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지역 15개 노인취업알선센터에는 한곳에 월평균 700여건의 취업신청이 들어와 절반 가까운 노인들이 취업을 하고 있다.

젊은이 못지않게 젊음을 자랑하는 노인들도 있다. PC통신 하이텔 원로방에는 5,000여명의 회원이 가입, 「사랑방」 「노변정담」 「금빛촌」 「크레용과 곰방대」 등 다양한 코너에서 사이버 세계를 만끽하고 있다. 그중에는 젊은이들의 대화방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적극파까지 있다.

「노노(NO노)클럽」으로 통칭되는 노인사교클럽에는 수십에서 수백명의 회원들이 모여 사교와 취미, 레저활동을 하고 있다.

외로운 노년을 보내기 보다는 재혼을 통해 새인생을 설계하는 노인들도 많아졌다. 노인 전문월간지 「골든에이지」가 올 1월 50대 이상 남녀 1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혼자가 될 경우 재혼하겠다」는 응답이 50%에 달했다. 지난해 4월 재혼한 조덕명(69)씨는 『5년전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외롭게 지내다 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했다』며 『처음엔 자식보기가 쑥스러웠지만 서로 의지하며 사니 외로움도 덜하고 정신과 육체가 모두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원우문화센터 정은영(60) 원장은 『지난 8년간 이곳에서 만나 결혼한 노인들이 170쌍에 이른다』며 『취미활동과 교제, 사회봉사활동 등을 통해 제2의 청춘을 구가하려는 새로운 실버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

◎알찬 노후를 생각하는 모임/“독신 노인들에게 친구를”/‘노인의 전화’가 94년 조직/20여명 출발 200여 회원/매달 둘째 목요일 정기모임

『「알노생」을 이성교제나 하는 모임이라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천만의 얘기야. 나와서 대화도 나누고 운동도 하고, 무엇보다 건강관리요령이나 법률 외국어 등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점이거든』

지난해 7월 「알찬 노후를 생각하는 모임」에 가입한 이동해(84·경기 가평군) 할아버지는 매달 둘째 목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서울 대현동 노후복지센터로 달려간다. 할아버지는 『알노생은 말동무조차 없는 독신노인들이 멋진 황혼기를 보낼 수 있는 곳』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인전문 상담기관인 「한국 노인의 전화」가 알노생을 처음 조직한 것은 94년. 배우자를 잃은 외로운 노인들에게 동성 및 이성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상담을 통해 이성친구가 필요하다는 독신노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처음 20여명이던 회원은 이제 200여명으로 불었고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모든 회원이 참석하는 월 1회의 정기모임은 티타임으로 시작된다. 커피나 차를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고 건강체조와 포크댄스 등 레크리에이션 행사도 갖는다. 모임이 끝난 후에는 마음이 통하는 노인들끼리 「애프터」를 갖고 얘기를 이어가는 경우도 흔하다.

회원들은 정기모임에 참석하는 외에도 문화시설인 노후복지센터를 이용하며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다. 여기서 사물놀이 민요 서예 외국어 등 분야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 소모임도 활발하게 이뤄져 최근에는 20여명이 제주도로 단체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내고 싶은 독신노인은 가입비 1만원만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모임에 참석할 때도 점심값 5,000원만 있으면 다른 회원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없다.

복지센터 강사 이서화씨는 『처음에는 이야기하는 것조차 쑥스러워 하던 노인들도 모임에 참석할수록 활기가 넘치고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고 귀띔했다. 문의는 (02) 363―8005.<이상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