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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수준 시설서 즐거운 노년/실버타운 유당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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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수준 시설서 즐거운 노년/실버타운 유당마을

입력
1997.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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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국내 첫선 ‘유료’/월 60만원 생활비와 최고 6,600만원 보증금/의사·영양사 등 시중받으며 각종 취미·레저 생활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팔달산 자락 야트막한 기슭에는 기업체 연수원을 연상시키는 현대식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88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실버타운 「유당마을」.

20일 낮 12시 지하 1층 강당. 박(93)모 할아버지 등 80, 90대의 입주 노인 16명이 종이접기 전문가 이상은(여)씨의 지도로 튤립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삼각형 부분을 위로 올려서 꽉 눌러 주세요. 그리고 양쪽을 잡고 풍선을 불듯이 살짝 불어 보세요. 예쁜 꽃이 됐죠. 참 잘 하셨어요』

손녀뻘인 「선생님」이 꼼꼼하게 설명하는데도 「학생」들의 질문은 쏟아졌다. 『나는 왜 안되지』 『이렇게 하는 것 맞아?』…. 마음은 하나라도 빨리 배워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데 도무지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사회복지사 안미자(여)씨는 『손가락 운동을 많이 하게 돼 치매 예방에 그만』이라며 『차곡차곡 모아 뒀다가 7월1일 개원기념일 전시회에 출품하고 찾아온 손자 손녀들에게 선물하면 아주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대지 4,200여평 건평 1,500여평의 유당마을은 양로원 56명, 요양원 21명 등 모두 77명이 정원이다. 현재 양로원에는 4부부와 자매 등 54명이, 요양원에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든 노인 10명이 입주해 있다. 입주자들은 평균 연령이 82세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해 10년 가량은 젊어 보였다.

입주비용은 아직 보통 노인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서 입주자들은 대부분 중상류층 출신이다. 양로원의 경우 1인당 월 60만원의 생활비와 6.5, 8.5, 12.5평 등 평형에 따른 3,300만∼6,600만원의 보증금을 내야한다. 부부는 보증금 6,600만원과 월 생활비 11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12.5평형에 들어갈 수 있다. 김재천 총무는 『반드시 자녀나 친척 등 보증인과 노인이 동행해 상담을 거친 후 입주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자에게 아들 딸 노릇을 해 주는 직원은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세탁원 청소원 등 모두 22명. 시설은 모텔 수준으로 물리치료실 자동목욕실 헬스실 독서실 탁구장 노래방 등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생일·경로·송년 잔치를 비롯, 노래·국악·서예 교실, 영화감상, 게이트볼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외출을 돕기 위해 하루 4차례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교사출신의 김(77)모 할아버지는 87년 퇴직금으로 경기 부평에 20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부부끼리 살다가 감옥같은 아파트생활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아내의 뜻에 따라 이곳으로 옮겼다. 새벽 5시 눈을 뜨자마자 도서실로 가 독서삼매에 젖는 그의 일과는 운동과 산책, 음악감상, 각종 프로그램 참가 등으로 채워진다. 요즘 거동이 부쩍 불편해 온종일 방에 남아있는 아내가 함께 즐기지 못하는 게 못내 안쓰럽다.

홍콩에서 아들과 함께 살다가 6년전 입주한 김(86)모 할머니는 『종교나 취미, 고향이 같은 사람끼리 어울릴 수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른다』며 『길거리를 떠도는 수많은 노인들에 비하면 대단한 호강』이라고 말했다.

301호실 입주자 강(80)모 할머니. 『5남매를 출가시키고 영감하고 둘이서 살았어. 영감이 세상을 먼저 뜨고 나니 문득 옛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 너무나 힘들었던 일이 떠오르잖아. 그래서 우연히 봐 둔 이곳을 찾게 됐어』 입주 당시 심한 관절염으로 지팡이 신세를 졌던 할머니는 의사와 간호사의 정기적인 진료로 이제 산책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다.

주말이면 자녀들이 손자 손녀와 함께 찾아 와 입주자들의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나 노년의 외로움과 불안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 최(83)모 할머니가 최근 이런 시를 썼다. 『…귀밑에 눈발 날리고/ 창 어두워 손으로 쓸어 보고/ 안테나도 고장 났고/ 맷돌은 닳아 빠져 새김질도 못하여라…』<김성호 기자>

◎재취업문제 심각/“용돈이나 쓸 정도 일자리만 있어도”/구직 73%가 ‘생계비 위해’/현실적 고용체계 시급

『집사람하고 둘이 용돈이나 쓸 정도지만 내 일자리를 갖고 있으니 부러울게 없어. 많이 걷고 움직이니 건강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일처리를 잘한다고 인정받을 때 느끼는 보람은 다른 무엇하고도 비할 수 없어』

D용역회사에 근무하는 양영기(73) 할아버지처럼 일자리를 갖는 것은 건강한 노인들의 가장 큰 소망이다. 할아버지는 주로 고객의 의뢰를 받고 주민등록등본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등 민원서류를 발급 받아주는 일을 1년 가까이 하고 있다.

10여년전까지 조그만 서점을 운영했던 할아버지는 지난해 5월 무의미하게 가는 시간이 너무 안타까워 재취업을 결심했다. 『토지대장을 떼러 충북 음성까지 출장을 가기도 했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야』 그러나 월수입을 묻자 할아버지는 『지하철을 무료로 타고 다니는 나같은 사람이야 괜찮지만 막 퇴직한 사람들에게는 돈벌이가 안돼』라고만 대답했다.

구호단체인 「플랜인터내셔날」 한국위원회에서 일하는 이찬호(65) 할아버지는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겉봉에 펜으로 일일이 주소와 이름을 써서 발송하는 일을 한다. 퇴역군인인 할아버지는 사회복지법인 「은초록(02―577―6388)」 소개로 이일을 시작했다. 『보수는 적지만 상관없어. 사회봉사를 통해 보람있는 노년을 보내고 싶어 선택한 일이니까. 내가 보낸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전세계의 기아를 돕기위해 성금을 낸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그러나 각종 상담창구나 취업센터 등을 통해 재취업을 의뢰한 노인들 대부분이 아직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고 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원하는 노인의 73%가 「생계비 조달」을 이유로 든 반면 「건강 관리」와 「시간 보내기」를 꼽은 사람은 각각 14.4%, 12.5%에 지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일자리는 대부분 전문성과 적성 등이 고려되지 않은 단순 노무직인데다 고용상태가 불안정해 생계비 조달에도 못미친다』고 지적했다. 또 같은 일을 하는데도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적은 월급을 주는데 항의, 1달 가량 다니던 소규모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 김(65)모 할아버지의 경우처럼 재취업 노인에 대한 차별대우도 여전하다.

서울시 북부노령자취업센터(02―974―0065)의 문현정씨는 『노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고용체계가 필요하다』며 『재취업을 원하는 노인들도 체면이나 권위보다는 일에 대한 보람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이상연 기자>

◎NO노 야구단/‘젊은 오빠’ 37명과 할머니 ‘치어걸’ 3명/99년 세계대회 추진

『백구를 향해 뛰어라』

21일 하오 3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체리홀에서는 이색적인 모임이 열렸다. 40대 후반부터 70대의 「젊은 오빠」 37명과 이들을 응원할 60대 「치어걸」 3명이 모여 국내 최초의 「노노(NO노) 야구단」을 창단하는 자리였다.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세월의 흔적이 얹혀 있었지만 유니폼을 차려 입은 노선수들의 얼굴은 젊음이 넘쳐 보였다.

야구단 결성을 주관한 노인전문 월간지 「골든 에이지」측은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밝고 활기찬 노인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구단은 박규채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단장으로, 왕년의 야구스타 윤동균·최동원씨를 명예 감독으로 영입했다.

선수들은 지난 2일 경기 구리시 LG전용구장에서 치러진 입단 테스트를 거쳐 선발됐다. 최고령 선수인 배용해(74·서울 은평구 갈현동)씨의 각오는 대단하다. 『일제때 중학교에 다니며 잠시 야구를 해본 적이 있어. 58년만에 글로브를 다시 끼어보니 감회가 새로워. 나이가 많아 주전에는 못 끼겠지만 체력이 닿는 데 까지 열심히 뛰어볼 생각이야』

선수대표를 맡은 장기원(67)씨는 『입단 테스트때 9명의 투수 지원자 가운데 구위가 가장 앞선다는 평을 받았다』며 『틈틈이 맨손체조와 피칭연습을 하며 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자랑했다. 치어걸을 자원한 강인자(63)씨는 『다양한 춤과 율동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오빠 동생들의 흥을 돋우겠다』며 의욕에 차 있다.

최동원씨는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기분으로 감독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며 『주말을 이용해 연습 및 자체 청백전을 열 생각이며 실력과 승부에 집착하기 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야구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골든에이지 곽원호 부장은 『앞으로 지방에도 노노야구단을 만들어 전국적인 리그전을 펼치고 일본 실버야구단과의 교류전도 추진할 것』이라며 『99년 「세계노인의 해」에는 실버야구 세계대회를 개최키로 했다』고 밝혔다.<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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