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마약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다.처음엔 깃털 같은 호기심으로 그것에 유혹된다고 했다. 값도 공짜고 투여량도 지극히 소량이라고 했다. 그러다 서서히 중독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공급자는 비싼 값을 부르기 시작하고 중독자도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세게, 하는 식으로 그 양을 늘려 청하고 끝내는 자기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마치 우리 모두 이 나라 정치권이 국민들 상대로 투여하는 어떤 마약에 서서히 강도높게 중독되어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깃털」과 「몸통」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한보사건의 추이만 봐도 그렇다. 어느날 한 재벌기업이 부도를 냈다. 그동안 이런저런 백을 동원해 천문학적인 은행돈을 끌어썼다. 배후세력이 있다. 몸통은 남고 깃털 몇개가 뽑히는 것으로 수사가 마무리된다. 국민은 좀 더 강한 걸 요구한다. 아주 특별한 한 아버지가 아들의 허물을 자기의 허물로 대국민 사과를 한다. 아주 특별한 아들도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아주 높은 공직자인양 「대국민」사과를 한다. 내각의 얼굴을 바꾼다.
영화 촬영기사도 아닌 한 비뇨기과 의사가 찍은 「전국민 관람불가」 비디오테이프가 다시 세상을 흔든다. 재판중 아주 특별한 아버지와 아주 특별한 아들의 「사과」와는 달리 정말 사과박스에 든, 「특별한 것이니 혼자 집에 가져가셔서 드셔야 할」 한보표 금사과 이야기도 나온다. 대검중수부장이 전격교체되고 사건을 재수사한다. 「몸통」이 관련된 2,000억원대의 리베이트설이 흘러나온다.
이만하면 우리 국민 모두가 빠져든 마약중독의 진행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이제 우리도 웬만한 것엔 눈도 깜짝하지 않을 만큼 담력도 크게 키웠고, 중독도 될 만큼 되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놀랄 게 없다.
그러니 다음 차례의 메뉴가 뭔지 몰라도 부디 강한 것을 다오. 더 짜릿하고 강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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