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근년에 많은 권력자들의 부침을 되풀이하여 경험하였다. 두 사람의 대통령이 재판에 회부되고 감옥에 가는 것을 보았고, 이제 또 한사람의 대통령이 그 도덕적 권위를 급속하게 상실하는 것을 본다. 사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 수립이후에 어떠한 최고 권력자도 좋은 끝을 맺은 일이 없다. 그리하여 그것은 거의 운명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헤겔은 역사를 움직이고 만드는 것은 일단은 그가 「세계사적 개인」이라 부른 영웅적 인간들이지만, 더 깊이 살펴보면 이러한 영웅들은 결국 역사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역사의 참 주체인 이성의 술수에 이용되는 것이고 많은 경우 그들은 그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현실로서 검증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사변에 속하는 이러한 거창한 역사관은 흔히 폭력의 정당화에 이용된다.
그러나 혼란한 과도기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하루살이 권력자의 교체가 되풀이되는 것을 보게 된다. 적어도 많은 영웅들을 희생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는 역사나 시대가 있음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이것은 단순한 혼란의 결과라기보다 그 나름의 이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혼란한 사회는 늘 사람들에게 풀어야 할 과제를 준다. 어떤 사회는 바르게 이 과제를 풀어 나간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회는 이 과제를 풀지 못하고 갈등과 혼란 속에 표류한다. 과제를 풀어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역사의 영웅이다. 과제의 도전을 받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불행하게 끝나는 권력자이다.
그러나 혼란된 사회의 문제가 하나 둘이겠는가. 시대의 과제는 여럿이고 또 시간과 더불어 바뀌게 마련이다. 시대의 과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것을 알되 해내지 못하는 것, 하나의 과제를 해냈으되 다음 과제를 못 해내는 것, 또는 과제가 바뀐 것을 알지 못하고 옛날의 과제에 집착하는 것 등 여러 경우의 실패가 있을 것이다.
공산권의 해빙이 시작될 때 서울에서 상영된 폴란드 영화에 「예스터데이」라는 것이 있었다. 공산치하의 폴란드에서 젊은이들이 서방세계의 자유―「예스터데이」를 부른 비틀스로 대표되는 자유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이다. 구세대는 젊은이들의 이러한 갈망을 퇴폐의 표현이라며 필요한 것은 더많은 혁명정신의 고취와 엄격한 규율이라고 했다. 조국을 해방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의 피나는 노력을 되새기게 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숨은 비판은 이미 사라져 버린 필요에 매여 현재의 필요를 못보는 체제의 경직성에 대한 것이다. 이 경직성은 폴란드뿐만 아니라 다른 공산국가에서도 볼 수 있다. 투쟁적 상황이 아닌 때에도 계속적으로 투쟁의 수사로서 모든 일을 대처하려는 것은 마치 한때 밥이 필요했다 하여 밥을 먹고 난 다음에도 계속 밥만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공하는 정치 지도자는 시대의 과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사람이다. 이 과제는 시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근대화가 중요했고 다시 문민정부수립이 중요했다 해서 그것들만이 시대적 과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지난 며칠동안 벌어진 일들은 오늘의 과제중의 하나가 정직하고 투명한 정치체제, 사회체제임을 말해준다. 부패·부도덕한 사회에서 사는 일의 고달픔이 이제 한계에 이른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능률이 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지금의 시대가 해결을 요구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새로운 지도자가 보여줘야 할 것은 이 과제의 명시화이다. 이제 불원간 대통령 선거가 있을 터인데 이 선거의 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바로 사회의 과제들을 밝히고 그 우선 순위를 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통령 선거 후보 논의에서는 이러한 과제의 확인을 위한 고민이나 토론의 흔적은 보이지 아니한다. 역사에 버림받는 지도자의 역사는 또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인가.<김우창 교수>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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