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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한국을 떠나며/토머스 해리스(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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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한국을 떠나며/토머스 해리스(아침을 열며)

입력
1997.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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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발령을 받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곳을 떠나게 되니 섭섭하기 이를데 없다.내가 한국을 떠나 가장 아쉬워하게 될 점은 주말마다 하던 북한산 등산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일일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세계의 어느 대도시에 차를 타고 15분 정도만 가면 그렇게 아름다운 산이 있겠는가. 영국 런던에서는 등산을 하려면 200㎞이상 달려야 겨우 산을 볼 수 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항상 계절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어서 좋다. 계절마다 다른 풍치가 있고, 거리 사람들의 옷차림도 바뀐다.

한국에서 약간 힘이 들었던 일은 한국인들이 우리가 파티를 할 때 참석여부를 잘 알려주지 않던 점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에서는 파티를 할 때 사람들을 초청하여 좌석을 배정하지 않고 많은 음식을 그냥 나누어 먹는 식으로 하기 때문에 참석여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정식 식사초대일 경우 좌석이 배정되고 요리사 또는 집사가 한사람 한사람 돌아가면서 시중을 들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오지 않을 경우 난감하다. 대사로 근무하면서 한국언론에 내가 세일즈 외교바람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 「세일즈 대사」란 별명을 얻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그런 활동이 21세기의 국가 경쟁력 제고에 필수적 업무라고 본다.

지난 3년간 김영삼 대통령과 존 메이저 영국총리가 네번이나 만났고 장차관급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양국의 교역량은 30억달러에서 60억달러로 증가, 한·영 교역량은 2배로 늘어났다. 특히 이 기간중 한국기업은 영국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여행객 등 인적교류가 급증, 양국간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이 유럽에 갈 때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영국이다. 그러나 양국교역 및 교류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한국은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떴고 민주주의에 익숙해졌다. 정치 경제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열린 사회로 변모했다는 것이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장래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밝다고 본다.

한국은 지금 부정부패문제가 불거져 나와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언급할 처지는 아니지만 내 생각으로는 부정부패 추방은 정부의 각종 규제와 통제를 철폐하는 길 밖에 없다고 본다. 규제가 있으면 그 규제를 하는 그룹이 권력을 가지고 공정하지 못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쓰고 싶어하며 인맥이나 학맥 등을 통해 특혜를 주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규제나 통제를 철폐하는 수 밖에 없다. 규제를 철폐한 나라가 결국 성공하는 나라로 남는 것을 우리는 미국과 뉴질랜드 영국 등의 경제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정부의 간섭이 심한 일본이 요즘 어려움을 겪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교훈을 찾을 수가 있겠다.

이 모든 활동이나 성과, 좋은 열매를 맺은 것을 나는 우리 대사관 한국직원들에게 돌리고 싶다. 외교관은 근무기간이 고작 3년 정도이므로 그 동안 줄곧 대사관에서 근무하여 인적 자원이나 한국의 배경을 아는 한국직원의 지속적인 도움없이는 외교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늘 영국 출장길에서도 말했고 한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휼륭한 한국직원들을 데리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곤 했다. 떠나기 전 다시 한번 그 한국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모든 것을 그들의 노고로 돌리고 싶다. (이글은 필자가 20일 이한하면서 본보에 기고한 것임)<전 주한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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