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테이프 사건의 언저리에서 경실련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공익의 보호라는 명분과 방법의 정당성 및 적법성의 사이에서 경실련이 내부적 의사결정체계의 미숙으로 인해 드러낸 모호한 입장은 시민단체의 역할과 활동영역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불신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80년대 후반 기존 사회운동의 명백한 한계속에서 제도정치권과의 거리를 유지한채로 행해지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자임자로 출발한 시민단체들은 경실련을 필두로 90년대 초반 한때 우리 사회의 가장 영향력있는 기구들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사정이 달라졌다. 다원적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가 미처 제공하지 못하는 공공재적 서비스로서의 소수의견, 반대견해를 보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의 입지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나, 현실속에서의 시민단체들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외형상의 덩치는 좀 커졌으나 안타깝게도 위상은 반대로 조금씩 약해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시민사회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의 입장에서 국가가 아닌 민간단체의 역할에 대해 실질적 중요성을 인정하고 부여하기는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민단체들의 자기개혁적 노력에 의해 그 위상을 제고할 수 있고 활동영역도 확보할 수 있다.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시민단체들은 대중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사회내의 도덕적 가치들을 시민단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국민의 신뢰를 구해 나가야 한다. 대중화에 바탕을 두지않은 시민운동은 오히려 역기능이 더 클 수도 있다. 시민단체들은 내부적으로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재정확보의 문제, 양질의 인력충원 및 유지의 문제는 그 대표적 두가지이다.
또한 시민단체는 조직과 구성원의 행위에 있어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 도덕성없이는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낼 수 없다. 도덕성의 제고는 조직의 운영이 투명하게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시민단체는 비밀결사여서는 결코 안된다. 의사결정과정, 재정과 인사를 포함한 조직운영의 모든 일들이 공개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만이 이번과 같은 안타까운 일을 다시 겪지않는 길이다.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이들은 시민단체를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참여동기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구성원들의 동기의 순수함과 봉사정신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시민단체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시민단체의 역할과 활동영역은 정부와 민간의 애정과 관심, 참여를 통해 인정되고 확보되어야 한다. 다만 시민단체들의 자구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함을 지적해 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