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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삶’/조정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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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삶’/조정래 소설가

입력
1997.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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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 다독거려주는 따습고 포근한 읊조림/인생살이 겸손과 관조의 예지 심어줘이땅의 시인들 중에서 작품이 가장 많은 시인이 고은 시인이다. 그만큼 창작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드높다. 그리고 부럽도록 많은 삶의 편력이 골짜기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그 숱한 골짜기를 흘러나온 시편들은 그만큼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습들을 갖추고 있다.

고은 시인의 시들은 편편이 호두알 같거나 밤톨같이 완성도가 야무지고 단단하여 읽는 맛을 더없이 고소하고 쌉싸름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출중함이 읽는 이를 주눅들게도 만든다.

나는 고 은 시인의 수많은 시편들 중에서 특히 이 「삶」을 좋아한다. 이 시가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우리네 인생살이에 대한 겸손과 관조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우리들 그 누구가 감히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과 삶을 대면하고 서서 자만할 수 있는가. 또한, 삶이 괴롭고 고달프다고 하여 쉽사리 허무에 빠져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향하여 겸손하고 관조의 태도를 갖추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미덕이다.

겸손은 삶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낳고, 관조는 인생에 대한 여유와 깨달음을 갖게 한다. <비록 우리가 몇 가지 가진 것 없어도> <우리가 기역 니은 아는 것 없어도> , 시인은 우리의 삶이 어차피 조금씩 누추하고 조금씩 모자라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지는 나무 잎새의 모습을 바라볼 일이다>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다 가지겠는가> 하는 잔잔한 어조로 자연의 섭리를 다시 자각케 하며, 탐욕을 줄여 인생을 관조케 하는 예지를 우리의 영혼에 심는다.

그리하여 <무정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 갈 일이다> 하며 서로의 삶을 보듬어 사랑하는 것만이 옳고 값진 삶인 것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러나 우리는 생의 욕구를 앞세운 일상의 수레바퀴에 휘말려 돌아가면서 얼마나 다급하고 두서없고 매몰찬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욕구는 탐욕이 되고, 그 탐욕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리고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한 우리네의 모습을 늘 높고 먼 자리에서 시인은 고즈넉히 바라보면서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의 모습을 바라볼 일이다> 하며 우리의 지친 영혼을 다독거려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따습고 포근한 읊조림을 들으며 잃어버린 나를 문득 찾고 흩뜨러진 나를 다시 세우는 것은 얼마나 소담한 기쁨이고 보람인가. 언제 읽어도 새롭고, 깨달음과 위안을 주는 시다. 그래서 빼어난 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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