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감축 상당 진전우여곡절끝에 개최된 미국과 러시아의 헬싱키 정상회담은 핵심의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유럽 확대문제에 대한 이견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회담에서 채택된 5개 공동성명 가운데 나토 문제를 다룬 유럽안보에 관한 성명은 「21세기를 향한 나토와 러시아간 동반자관계 구축」을 명시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양측이 나토 확대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회담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단호한 어조로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 회담성과의 확대해석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회담은 과거와는 달리 테이블에 오른 의제의 논의 순서부터 진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미·러 경제협력 분야 협의로 시작해 나토확대 등 유럽안보문제로 넘어가면서 상대의 양보를 얻어낼 계획이었으나 옐친 대통령이 유럽안보에 관한 협의를 최우선적으로 다루자고 고집, 결국 손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담 막바지에 처음부터 예상됐던 5개의 공동성명과는 별도로 헬싱키 회담을 총 결산하고 21세기 유럽안보를 새롭게 규정하는 미·러 공동성명을 발표할 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회담장 주변에 나돌았으나 불발로 끝났다.
이같은 분위기는 회담시작 이전부터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잃을 것은 두사람 사이의 우정뿐」이라는 한 러시아 일간지 제목에서 보듯이 옐친 대통령은 국내여론에 발목이 잡혀 나토확대 문제를 미국에 양보할 수 없는 처지였다.
미국측으로서는 거부권 등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정체결을 주장하는 러시아측의 요구를 받아 들이기가 어려운 입장이었고, 러시아측도 나토확대의 큰 흐름을 거역하기 힘들어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그런대로 「명분축적」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 많은 관측통들의 전망이었다.
그러나 양국이 비록 이번 회담에서는 나토확대의 돌파구를 찾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미국측이 나토확대와 연계를 시도했던 군축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진전이 이뤄졌다.
양국 정상은 당초 논의 가능성 수준에 머물던 제3단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 Ⅲ)분야에서 핵탄두를 2007년까지 2,000∼2,500개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가 이행될 경우 양국은 핵탄두 수를 냉전 절정기의 80% 수준으로 감축하게 된다.
그렇지만 93년 체결된 START Ⅱ(2003년까지 핵탄두수 3,500개로 감축)가 아직도 러시아에서 비준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합의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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