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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공동회(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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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공동회(지평선)

입력
1997.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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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종로 네거리에서는 가끔 만민공동회라는 민중집회가 열렸다. 미국망명에서 돌아와 독립협회를 결성한 서재필 박사가 윤치호 이상재 선생 등 선각자들과 손잡고 일으킨 민권운동이었다.그 해 3월9일 보신각 앞 너른 마당에는 의관을 정제한 양반들과 상인 천민 부녀자 학생 등 계급과 신분을 초월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사회를 맡은 월남(이상재의 호)은 군중을 향해 나라일에 관해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말할 자유가 있다고 알렸다. 『말이 옳으면 예 하고, 아니면 아니오 하시오』 하고 의사표시 방법도 일러주었다. 이 모임에서 연사들은 부산 영도를 조차해 극동함대의 석탄 공급기지로 쓰려는 러시아의 침략야욕에 무력한 정부를 중점적으로 규탄했다. 집회가 끝난 뒤 러시아 교련관과 탁지부 고문 해임건의안이 채택돼 월남이 정부에 전달했다.

공식 집회허가를 얻은 10월29일 행사에서는 백정출신의 박성춘이란 시민이 등단, 『오늘같은 판국에서 이국하고 편민하는 방법은 관민이 합심협력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의 연설이 끝난 뒤 월남이 6개조의 만민결의안을 발표하자 우레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결의안 중에는 광산 철도 삼림 등에 관한 정부의 대외 조약사무는 각부 대신과 중추원 의장의 합동날인 없이는 시행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었다. 결의안을 접수한 고종은 즉시 이를 시행토록 명했다. 동시에 탐관오리들을 엄히 다스리고 탈취한 민간의 재물을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등 5개항의 조서도 반포했다.

99년이 지난 97년 3월20일 종묘공원에서 같은 이름의 집회가 열렸다.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가 만민공동회 정신을 본받아 마련한 이 행사에서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 아들의 국정개입 등 시국문제에 울분을 토로했다. 「만민보」라는 게시판에도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시민의 소리들이 가득 실렸다. 민주주의라는 말도 없던 시대에도 민중의 소리는 즉각 수용됐다. 현대판 만민공동회가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의 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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