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시집 「여백」은 물론 여백이 많은 시집이다. 하지만 이때 「여백」이란 단순히 시각적인 차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여백은 그냥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무수한 언어의 생성을 머금고 있다. 독자에게는 그 생성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가 주어진다. 시인은 그것을 「여백은 말로 채워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말들을 이미 품고 있다. 말들이 불어나면 여백은 더 넓어진다」라고 표현한다. 여백의 시학이란 시학의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태도 너머에 있다.이 시집의 1부 시들은 시인의 이전 시집 「눈사람」의 연장선상에 있다. 시인은 앞의 시집에서 몇 편의 「눈사람」을 이미 선보인 바 있지만 오히려 이 시집에 와서 「눈사람」이라는 시적 모티프는 보다 넓고 깊게 탐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1부의 시들을 읽어보면 시인은 「눈사람」이 가진 죽음과 생성의 순환성과 가변성 그리고 그 이미지의 단순하고도 그로테스크한 면모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불 속에 훨훨 눈사람 하나 태우고 나서 백자 항아리에 재를 긁어 담으려고 꺼내보니 예전의 하얀 눈사람 그대로더군요」라는 이 시집의 첫 시 「우화」에서처럼 눈사람은 재와 탄생의 순환성을 이미 그 몸안에 가지고 있다. 시인은 그 「눈사람」에게서 「스님들의 유골 항아리」와 「만월」을 동시에 보며 「봄이 오기 전에 녹아버릴 무성의 존재로 태어난 몸이지만」 그 안에서 신생을 품고 있는 「알」과 「만삭」의 이미지를 캐낸다. 그런 「눈사람」의 존재는 사람을 닮아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가지지 못한 매혹적인 단순성을 가지고 있다. 「눈사람」은 온갖 분별과 분열을 넘어서서 단순하고 멍청하게 자기 존재를 산다.
최승호는 일찍이 그의 동년배 시인들과 함께 80년대의 정신적 풍경을 날카롭게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그는 90년대를 넘어서서도 자신의 시가 가진 반시대적인 의미를 보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시인 중의 하나이다. 여백이 없는 삶, 여백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그의 시는 하나의 반성적·비판적 표지이다.<이광호 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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