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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은행만의 책임인가(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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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은행만의 책임인가(사설)

입력
1997.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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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 삼미 등으로 부각되는 재벌 및 중견그룹들의 연이은 부도·도산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누적, 심각한 경영난에 부닥치고 있다. 불황의 끝이 보이기는 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 재계와 금융계에서는 4월 금융대란설 등 부도사태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대외적으로도 한국계 은행들의 신뢰도가 추락, 자금차입에 특별가산이자(코리아 프리미엄)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외국 금융기관들은 상환기간이 만료된 차관의 상환 연장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한다. 금융위기의 징후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멕시코 사태가 초래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도 않다. 정부, 금융계, 재계 등 관련 경제주체들은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현행의 금융위기는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체제가 지금까지의 관치 또는 정치금융 체제에서 시장경제의 자율금융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과도기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위기의 처방이 간단 명료할 수도 없다.

강경식 경제팀은 부도사태와 관련하여 『한보철강 케이스를 마지막으로 정부는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나 자금지원에 대해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관련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라는 방침을 은행연합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은행이 부실대출을 자기 책임아래 처리하라는 것이다. 정부의 이 방침은 타당한 것이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의 선진금융권에서는 거의 대부분 이렇게 해오고 있다. 대출 등 여신행위가 완전히 자신의 책임아래 이뤄지는 자율금융 체제 아래에서는 부실에 대해서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율금융 체제가 아직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한보나 삼미부도 사태에서 보듯 자율금융의 도입이 공식화한 뒤에도 정·관·경유착 형태의 대형 금융비리가 상존해 왔다. 물론 은행장 등 경영자들이 외압에 저항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그러나 외압을 가한 정치세력이나 고위관료, 돈을 주고 외압을 매수한 기업인들의 책임 또한 적지않다. 은행에 대해 관행화되어 온 정·관·경유착 비리에 대한 책임을 일시에 전적으로 지운다면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지난 두해에 걸쳐 부실여신이 급증하는 추세인데 제일은행의 경우 유원건설, 우성건설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도 한보, 삼미사태로 경영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정부로부터의 별도 지원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은행의 자율경영 체제로의 전환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으나 연착륙을 위해서는 정부지원을 일시에 완전 단절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과도기적 조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은행의 자율경영은 인사 및 영업에서 정치와 관권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독립되는 선진형의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경유착을 원천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정치자금법의 개정 등 외적인 환경정비도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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