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엔 술인심이 후하다. 워싱턴은 술인심이 박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 서울의 밤은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무르익는다면 워싱턴의 밤거리는 밤 10시가 지나면 이미 고요하다. 서울에선 하루저녁에 1인당 수십만원이 드는 술자리가 흔하다. 무슨 돈들이 저렇게 많을까 싶은데 월급쟁이들이 매달 받는 월급으로는 엄두도 못낼 술자리가 룸살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워싱턴에서는 1인당 수십만원짜리 술자리가 없다. 고급식당이라야 1인당 100달러(8만6,000원) 안팎이다. 워싱턴 전체를 통틀어 이만한 돈이 드는 고급식당은 그나마 손에 꼽을 정도다. 워싱턴이 경제 중심지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뉴욕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월 스트리트 주변에 모여있는 고급나이트클럽 역시 위스키 한잔에 5달러 안팎으로 1인당 100달러를 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GNP)을 보면 95년 한국이 1만76달러, 미국이 2만5,630달러로 미국이 한국의 2.5배가량이다. 반면에 하루저녁 술값은 한국이 1인당 수십만원으로 수만원에 불과한 미국의 5배를 족히 넘는다. 홀쭉한 호주머니가 불룩한 호주머니를 압도하는 이러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다름아닌 한국기업의 접대비와 비자금이다.
공식통계상 95년 한국기업이 세금을 한푼 내지않고 공식적으로 사용한 접대비는 1조6,240억원이다. 접대비 대국이다. 국내기업들은 별다른 규제가 없는 이 접대비로 서너명의 하루 술값이 수백만원씩인 서울 룸살롱문화를 지탱해주고 있다. 세제상으로는 사치성 음주에 세금지원까지 하는 폭이다.
경제대국 미국에선 세금을 내지않는 공짜접대비가 없다. 아무리 적은 액수의 접대비라 하더라도 50%만 접대비로 인정, 나머지 절반에 대해선 세금을 물린다. 접대내용이 특급호텔연회나 골프투어 등 호화·사치성일 경우엔 접대비에서 제외시켜 100% 과세한다. 또 공직자들은 윤리규정상 20달러를 초과하는 접대나 선물을 받을 수 없으며 민간기업들조차도 세금을 내지않는 돈으로 특정 개인에게 1년간 25달러이상의 선물을 줄 수 없도록 국세청이 규제하고 있다. 접대비를 쓰거나 받는 양쪽을 각각 묶어 이중의 억제장치를 해놨다.
당초 접대비는 사업을 잘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라는 시각에서 세제혜택을 받았다. 이제 현실은 명백히 윤활유 차원을 벗어나 경제를 좀먹는 부식제가 됐다. 접대비대국은 경제대국이 될 수 없다. 접대비오염이 일상화한 나머지 한푼이라도 더 연구비에 쏟아부어야 할 경제난국에서도 인허가·상거래 상대방에게 접대비를 이용해 비위를 맞추기에 바쁘다. 이것이 기업의 실력으로 탈바꿈한다. 접대비에 100% 세제혜택을 준다는 것은 물론 시대착오이다. 한보사태도 근본적으로는 접대비대국이라서 치르게 된 뼈아픈 대가라면 하루빨리 접대비대국에서 벗어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야 경제대국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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