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장개석) 전 대만총통의 미망인 쑹메이링(송미령) 여사가 20일 뉴욕에서 100세 생일을 맞았다. 「중국현대사의 증인」이라 불리는 송여사의 생일을 맞아 주미대만 대표부는 붉은 장미 100송이를 선사했고, 대만에서 온 각계인사들은 국민들이 직접 적은 축하서명록을 전하면서 장수를 축하했다고 한다.송여사와 자매들을 두고 「비운의 자매」라고도 한다. 3자매중 막내인 송여사와 바로 위 언니 칭링(경령)과의 엇갈린 인생행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첫째인 아이링(애령)은 재벌의 아내가 되어 정치와는 인연이 없었다. 둘째 언니는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쑨원(손문)의 부인. 남편이 죽은 후에도 「가장 확실한 사상계승자」로, 「투철한 혁명운동가」로 활약해 중공정권수립후엔 국가부주석 등 최고지도자급의 한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는 81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각급학교 교과서는 중일전쟁때 구호물자를 모아 항일운동중인 공산당에 보냈던 애국의 주역으로 기술하고 있다.
메이링(미령)은 국공합작실패로 국민당이 패배하자 49년 남편과 함께 대만에 쫓겨와 26년간 살다가 남편과 아들(장징궈·장경국)이 타계한뒤 미국에서 홀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미국인생은 「일반적인 여생」과는 판이한 것이었다. 43년, 당시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초청, 외국여성으로는 최초로 미 의회에서 연설했다. 미국국민이 뽑은 세계 10대 인기여성이 되기도 한 전력을 과시하듯 줄곧 고국을 위한 민간외교에 주력해 왔다. 특히 95년엔 98세의 노구를 이끌고 미 의회에서 종전 50주년 기념연설을 하는 등 국제적 고립감에 젖어있는 대만국민들에게 긍지와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번 그의 백수를 맞아 대만국민들이 다시 한번 되새기는 교훈이 있다고 한다. 「한남자의 아내로서 남편 뒷바라지에 게으르지 말 것과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애국, 애족하려면 봉사하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송씨 자매가 어렸을적 미국유학을 떠날 때 목사 출신인 아버지가 당부했다는 말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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