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의 공세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17일 연극 「속 마지막 시도」의 극단대표와 연출자가 음란물공연혐의로 구속되더니 20일엔 대우시네마네트워크(DCN)가 미국의 「플레이보이」채널을 끌고 들어오려다 여론의 반대에 밀려 이를 포기했다. DCN의 계획은 이번엔 좌절됐다고 하더라도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멀지않아 다가올 안방 「포르노시대」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다매체 다채널시대를 맞아 외설과 폭력물이 넘쳐흐르고 있다. 영화 연극 성인용비디오는 물론 외설 노래방의 음란도도 심각하다.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의 경우 음란수위가 위험선을 넘어선지 오래다. 언론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관련 사이트의 53%정도가 포르노였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의 모방범죄도 무시할 수 없는 비율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연극도 크게 다르지 않다. 95년 연극 「미란다」를 공연한 극단대표가 음란물공연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같은 기억이 아직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엔 「속 마지막 시도」의 관계자 2명이 연극관계자로는 처음 구속됐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음란연극물이 늘어나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19일엔 연극 「욕망의 섬」에 출연중인 여배우가 노출출연을 거부하고 나서 놀라게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플레이보이 채널을 끌고 들어와 돈을 벌겠다고 나섰다가 물러섰다. 그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플레이보이 채널도입에서도 세계 여섯번째 선진국이 될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선진국에서는 포르노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성인전용 영화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이의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태세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각국의 위성방송이 안방을 넘나들고 2000년대엔 한반도 상공에 1,000여개의 위성방송채널이 거미줄처럼 엉기는 국경없는 전파시대에 규제가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개방풍조가 사회 전반에 몰아치고 외설과 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준없이 방치할 경우 독버섯처럼 사회는 물론 청소년들을 좀먹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법으로만 다스릴 수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특히 외설과 예술의 가림이 어려운 연극 영화 등은 법보다는 관계자들의 양식에 호소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창작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상업주의를 바탕에 깐 외설물까지 보호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외설물이나 폭력물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조치도 빼놓을 수 없지만 관계자들의 양식과 함께 이를 경계하는 높은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