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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재벌·금융 ‘고리’/박무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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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재벌·금융 ‘고리’/박무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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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한보사태가 터지는게 아니냐는 의혹속에 삼미가 또 부도를 내고 쓰러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의혹은 의혹대로 끝없이 부풀어 가고 있는데 경제위기설까지 새로 가세해 혼란과 불안이 극으로 치닫는 모습이다.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돌고 있는 4월 금융대란설, 30대 중견그룹 연쇄부도설, 외환위기설 등은 나라를 아예 공황상태로 몰아넣을 듯한 기세다. 4월에는 노동계와 학생들의 시위가 집중될 위험성이 잠복해있는데다가 한달 내내 한보 청문회가 열리고 경제쪽에서도 대란과 위기설이 난무하니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말 것 같은 분위기다.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인과 사회단체 지도급인사 8만여명에게 보낸 서한에서 『피땀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돌고 있다』고 말한 것이 위기를 더욱 실감케 해주고 있다. 국민소득 1만달러의 경제적 토대가 마침내 무너져내리고 나라가 통째로 뒤틀려 떠내려가버릴듯한 불안감에 사람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그러나 위태롭고 불안해보이는 지금의 이 상황도 역사의 긴 눈으로 보면 발전의 한 과정일 뿐이다. 건국 이래 50년동안 누적돼온 온갖 적폐가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정치는 독재와 권위주의의 틀을 벗어나 민주화 과정의 몸살과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고 경제도 개발독재 시대를 벗어나 창의와 능률의 시장경제 시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과도적 혼란과 충돌을 겪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것은 불안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환기의 중요한 시기를 정신을 잃은채 허송하는 것이다. 잘못된 과거를 결별하는 일, 민주의 토대와 질서를 새로 세우고 경제의 틀을 새로 짜는 일, 건국 50년동안 이룩한 소중한 자산을 승계하고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일에 소홀한 것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한보나 김현철사태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참사」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반성이라는 걸 모르고 아무도 교훈을 얻으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등 대형 참사들이 줄을 이었었지만 잊혀졌다는 것 외에 달라진게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도 일정한 주기를 두고 판에 박은듯 되풀이되고 있지만 달라지는게 없다.

한보나 김현철 사태를 단순화시켜보면 그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이 나라에 뿌리를 내려왔던 한국형 비리의 복제품에 불과하다. 정치와 재벌과 은행-. 지하에 유착된 이 검은 삼각구도는 권력형 비리의 제조창이다. 한보는 이 제조창에서 나온 또 하나의 비리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돈 없이 정치를 할 수 없다. 그 돈은 재벌에서 나올 수 밖에 없고 재벌은 은행없이 생존할 수 없다. 은행을 지배하는 사람은 은행장이며 그 은행장은 정치권력이 임명한다. 정치인은 재벌에 돈으로 묶여있고 재벌은 은행에 자금으로 묶여있고 은행장은 정치권력에 자리가 묶여있다. 서로 의지하고 유착해서 공생하는 관계다.

수십년 묵은 이 비리의 삼각구도를 깨고 그 제조창을 파괴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가장 급한 일이다. 한보를 통해 비리의 실체를 밝히고 그 뿌리를 제거하겠다는 국민적 합의와 결의만 얻을 수 있다면 한보사태와 그로 인한 혼란도 나라발전의 거름이 되고 약이 될 수 있다.

김영삼정부가 이 일만이라도 성의있게 해준다면 그것이 바로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것이고 나라에 진 빚을 갚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기말에 시들어진 개혁의 꽃을 다시 한번 피워보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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