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깊고 물길마저 끊어져 길이 없는 줄알았는데 버들가지 그늘 아래 꽃이 활짝 핀 한 마을이 나타나네> (산궁수진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북한의 황장엽 비서는 망명신청 35일만인 18일 베이징(북경)을 떠나 지금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그 소식을 접하며 문득 3년전 첸지천(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이 기자회견 중에 읊은 시구가 떠올랐다. 산>
전부장이 인민대회당의 중앙홀을 빽빽이 메운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이 시구를 읊은 94년 3월16일은 북한의 핵확산 금지조약(NPT) 탈퇴로 야기된 북한 핵위기가 1년여의 지리한 실랑이 끝에 「벼랑」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미국 등 서방국은 북한의 계속된 사찰거부에 더는 못참겠다며 경제제재 절차를 진행시켰고 세계의 이목은 또다시 거부권을 지닌 중국에 쏠렸다.
전부장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중국의 기존의 입장을 고장난 레코드마냥 되풀이했다.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리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던 당시 전부장의 그같은 발언은 한편으로는 무책임해 보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웠다. 그런 마음을 달래듯 전부장은 이 시구를 읊었던 것이다. 북한 핵위기는 결국 그해 10월24일 북미간 제네바 핵합의라는 평화적 방식으로 수습됐다. 중국 입장에서는 「우일촌」을 찾은 것이다.
황비서의 망명 초기 모두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적지않은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비서의 한국행은 시간문제지 결국 성사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섭섭하게 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는데 성공했다. 중국은 「마을」을 또 다시 발견한 것이다.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 북한 핵문제, 그리고 이번 황비서의 망명사건에 이르기까지 남북한 긴장의 고비마다 중국은 「옛 친구」와 「새 친구」사이에서 절묘하게 등거리외교를 펼치며 실리를 톡톡히 챙기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외교력은 한국이 92년 단교 당시의 서운함을 배경에 깔고 던진 「옛친구」대만의 「핵쓰레기 카드」에 여전히 「마을」을 찾지 못한 상황이라 돋보이고 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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