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없음에 뿌리 둔 무국적자”/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생각/정체성 회복노력도 결국 실패할 것/죽음은 명료한 삶을 보여주는 도구/테러협박 진통 사인회 6월로 연기지난 1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 아쿠타가와(개천)상을 받은 재일동포 여성작가 유미리(29)씨가 수상작 「가족시네마」(고려원간)의 한국출간에 맞춰 19일 내한했다. 5박6일의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를 20일 만났다. 두 갈래로 땋았던 머리를 풀어 길게 내렸고, 서울의 봄 분위기에 어울리는 까만 바탕에 분홍색 장미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로 멋을 냈다. 보통보다 작은 키에 바람불면 기울 것 같은 가냘픈 몸매, 겁먹은 듯 동그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표정. 외면만으로는 역경을 딛고 일본문단에서 차세대 작가의 위상을 굳힌 옹골찬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녀린 여성의 섬세함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비로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강인함과 나이답지 않은 지적 성숙이 저절로 드러났다.<편집자 주>편집자>
―고국에 온 소감은.
『상상을 초월한 동포들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서울에 오려고 팩시밀리를 이용해 이곳 주관사와 몇 번 서신을 교환했습니다. 내용 중에 「귀국」이라는 단어가 있었어요. 일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이랄 수도 없는 저에게 귀국이란 어떤 의미인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이 네번째 방문이지만 앞으로 한국에 자주 와서 그 의미에 대한 답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서울에 온 이유는 가능한 한 저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연극에서 소설로 작업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느 쪽에 더 관심을 둘 예정입니까.
『연출가의 해석, 배우의 몸매 등에 따라 내가 쓴 희곡이 실망스럽게 포장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독자에게 직접 전하고 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요. 앞으로도 두 작업을 같이 할 생각입니다. 나는 대립하는 것이 좋은데,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대립을 전제로 하니까요』
―작품의 주된 소재가 「가족」입니다. 가족을 통해 그리는 문학적 세계는.
『어린 시절이 불행했습니다. 즐거운 식탁이나 흐뭇한 대화가 있는 단란한 가족이 결코 아니었지요. 가족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의 근원적 불안을 통해 현재를 사는 사람의 충실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가족은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또 가족의 붕괴를 국가와 사회의 붕괴로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조직입니다』
―자신의 가족에 대해 들려주시지요.
『68년 가나가와(신나천)현에서 2남2녀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9세에 어머니가 가출했고 그때부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여러차례 자살미수로 정학처분을 받았고 고교 1년 때 퇴학당했습니다. 부모가 이혼한 이후 한동안 어머니와 함께 지냈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이혼한 부모를 용서할 수 없었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부모란 용서하고 말고 하는 대상이 아니지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족제도를 신뢰합니까. 가족관에 대해 얘기한다면.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한 남자가 갑자기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사회가 부여해주는 틀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죠. 가족의 개념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보다 가족 바깥에서 더욱 재미와 평안을 느낍니다. 가족애에서 자기애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이제 가족은 전통적으로 지켜져왔던 시나리오에 의해 운영되지 않습니다. 각 개인이 자신의 독자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있지요』
―죽음에 대한 집착이 작품 속에 드러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대사회는 죽음이라는 생명의 기본현상이 드러나지 않은 채 잊혀지고 있습니다. 죽음은 병원과 의사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상상이 될 정도니까요. 죽음은 인간주변에 항상 있는 친숙한 존재입니다. 죽음을 통해 현재 살아있다는 사실을 더욱 명료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식 때문에 죽음을 많이 다룹니다』
―독자사인회가 우익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협박 때문에 취소됐는데.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이후 지난달 20일과 23일 도쿄(동경)의 가장 큰 4개의 서점에서 사인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출판사로 전화를 해 「일본을 모욕하는 발언을 일삼는 조선인, 너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폭탄테러를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일본을 모욕하는 발언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예요. 밀어붙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만에 하나 고객들이 밀집된 곳에서 정말 사고가 나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취소했습니다. 그러나 6월11일에 독자와의 대화와 사인회의 일정이 다시 잡혀 있습니다』
―유미리씨는 「없음」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은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데만 주력해 왔습니다. 각종 가구, 학벌, 돈 등이죠. 그러나 모든 것을 갖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게 됐습니다. 요즘 일본의 여성잡지를 보면 「진정한 친구와 연인을 찾자」는 특집이 자주 등장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다 소중한 것을 찾자는 반성이지요. 저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니 나라도 없고, 가족도 없습니다. 물론 중학교 졸업자이니 학벌도 없지요. 어느 순간 풍요로운 사회에서 아무 것도 없는 존재가 정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저는 중학교 때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죽은 자와 산 자에 대해 모두 미안합니다. 자연스럽게 무소유에 대한 인식이 생겼죠. 「없음」은 「쓴다」는 것의 원동력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됩니다』
―세상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현실사회가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살만한 사회가 아니고, 할수만 있다면 거부하고 싶은 사회이죠. 그래서 글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적이 없다고 했는데 정체성을 찾고 싶은 의향은 없는지요.
『저는 국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요. 그러나 작가이든 철학자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순간부터 「쓰기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정체성 상실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겠지만 결국은 못이루고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일본에서 유미리씨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곧 베스트셀러라는 등식은 없습니다. 현재 「가족시네마」가 23만5,000부정도 팔렸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좋은 실적이지요. 「가족」이 테마라는 점이 설득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요.
『원룸아파트에서 혼자 삽니다. 다다미 10개 정도의 작은 집이지요. 돈이 생기면 친구에게 옷을 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인생활은 전혀 없습니다. 하루에 팩시밀리용지 한 롤이 모두 들만큼 연락이 많이 옵니다. 거기에 답변해주는 것으로도 하루가 모자라지요』
―한국에 와서 살 생각은 없습니까.
『저는 원래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계획이 없어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살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서서히 권위를 잃어가던 아쿠타가와상이 유미리씨를 수상자로 선정한 뒤 다시 명성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웃음)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요.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주는 작품이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약력
▲68년 가나가와현에서 유원효(64) 양영희(51)씨 장녀로 출생
▲84년 요코하마(횡빈)공립학원고등학교 1년 중퇴
▲86년 극단 청춘오월당 결성
▲88년 처녀작 희곡 「물속의 친구에게」 발표
▲92년 희곡 「물고기의 축제」로 최고권위의 기시다 구니오(안전국사)희곡상을 최연소로 받음
▲96년 소설 「풀하우스」로 이즈미교카(천경화)문학상, 노마(야간)문예신인상 수상
▲97년 1월 소설 「가족시네마」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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