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마인드 무장 ‘복지부동 NO’/정치보다는 정책논리를 더 중시/경직된 관료조직 새바람 불구/‘샌드위치맨·부속품화’에 갈등도공보처의 한 사무관(33)은 앞으로 생활화할 위성방송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대학때부터 이 분야의 전문가를 꿈꿔온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공무원 임용후에도 공보처를 자원했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동료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도 벌인다.
경제부처 고참 사무관 이모(37)씨는 「모르쇠」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민원부서에 근무하다보니 각종 이권과 관련한 청탁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쏟아지지만 「모르겠다」 「권한밖이다」는 말만 되풀이해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보다 못한 상급자가 혹 『웬만하면 들어주라』고 권유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한다.
공무원조직이 달라지고 있다. 더 이상 경직되고 정체된 조직이 아니다. 그 주된 동력은 30대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이전의 그 어느 세대보다 치열하게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세계를 펼치는 프로인 동시에 공직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개혁세력이기도 하다. 이같은 배경에는 80년대 격변기 대학생활을 보낸 젊은이들이 졸업후 고시열풍에 묻혀 관료로 진출한 사례가 많았던 데도 기인한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진취적 사고로 무장한 이들은 전문관료로 성장하기 위해 개인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들의 등장은 경직되고 정체된 관료조직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사회부처 사무관 신모(36)씨는 『40, 50대 공무원들이 현재의 지위나 조건에 안주하는 반면, 30대는 문제점을 고민하고 개혁하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전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치논리보다는 정책논리를 우선시한다는 점』이라며 『공무원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중추역할을 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거대한 관료조직에 몸담은 30대는 그러나 환경적응과 행태설정에 고민이 많다.
중앙부처 공무원 김모(35)씨는 얼마전 경험한 일이 못내 충격적이다. 갑자기 야근할 일이 생겨서 부하 직원들에게 함께 하자고 독려했으나 갓 전입한 젊은 사무관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친구와의 선약을 이유로 가방을 싸들고 빠져나갔다. 상관이 퇴근하기 전에는 으레 자리를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김씨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또 다른 중앙부처 사무관 박모(36)씨는 최근 국장에게 결재를 올렸다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위에서 지시한 정책방향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금 「독자적인 의견」을 가미해 기안한 게 화근이었다. 『아직도 티를 벗지 못했다』는 질책이 뒤따랐다.
30대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샌드위치맨으로 비유한다. 위로부터 눌리고 아래로부터 치받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를 빗대는 말이다. 일반 기업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위계질서가 중요시되는 공무원세계에서 30대가 설 자리는 그래서 더욱 좁다. 「내 위치는 어디인가」「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는 이들에게 늘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권위는 싫어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대 출신의 한 간부(36)는 『의식은 20대에 가깝지만 행태는 40대에 경도돼 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기존 보수계층 행태에 비슷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종의 생존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조직보다는 개인과 가족을 중시하는 30대의 풍조는 공무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40대 이상 선배나 상관들은 『우리 때보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고 말하지만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검사경력 9년의 한 서울지검 검사는 초임시절 법집행자라는 성취감에 밤샘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개인생활이 줄어들면서 요즘들어 허탈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연수원 동기 변호사나 후배들을 보면 흔들리는 자신을 느낀다. 사무관 3년차인 김모(31)씨는 지난달 사표를 내고 한의사가 되기위해 대입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남들은 안정된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고 의아해 했지만 조직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절감한 까닭이다. 실제 국가공무원 퇴직율은 93년 3.7%, 94년 3.8%, 95년 3.9%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중 일반직은 94년 4.7%에서 95년 5.5%로 급증했다. 95년 퇴직한 공무원 3만9,271명중 자의에 의한 퇴직이 2만3,716명으로 60.4%였다.
같은 30대라도 하위직 공무원들이 느끼는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열악한 보수와 제한된 승진기회는 이들을 상실감에 빠뜨린다. 한 지방도시 7급 공무원 김모(31)씨는 『공무원생활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이라는데 자부심을 잃은지 이미 오래지만 그만두면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남아있다』고 자조했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최모(31)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원해 9급 공무원으로 들어왔으나 대민서비스라는 생각보다는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장룡씨가 95년 서울시 공무원 2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공무원 직무만족」 연구논문에 따르면 54.2%가 보수가 열악하다고 답했으며 이중 30대(35∼39세)의 불만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광웅 교수는 『30대 공무원들은 실질적으로 모든 업무를 입안·주관하는 허리인 동시에 진부한 관료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혁신적, 개혁적 세력』이라며 『이들의 직무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사기를 지속적으로 진단하고 근무의욕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충재 기자>이충재>
◎예술행정연구회/문체부 사무관·서기관 모임/‘문화정책포럼’ 등 활동 활발/새 분야·새 시각 도입 제언도
30대 공무원 중에는 「공부하는 관료」를 지향하는 이들이 많다. 문화체육부와 그 산하기관의 젊은 사무관, 서기관들이 주축인 「예술행정연구회」는 이런 생각을 가진 30대 관료들의 모임이다. 회원수는 모두 40여명.
93년 5월 결성된 이 모임의 주요 사업은 1, 2개월마다 문화예술 행정과 관련된 주제를 놓고 벌이는 문화정책 포럼. 지금까지 다룬 주제는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위상 재정립방안」 「이벤트 활성화와 정부의 역할」 「예술마케팅」 「예술창작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등. 문체부의 업무와 밀접히 관련된 것도 있지만 생소한 개념들도 많다. 또 외국서적을 번역 출간하거나 정책제언 등의 활동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과장 원용기(36) 서기관은 『관료적 타성에 젖지않고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새로운 분야, 새로운 시각을 도입해 보자는 게 회원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말했다.
때문에 모임에는 문화예술계와 학계 인사들이 옵저버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회원 대부분이 정부 주도의 문화정책에서 벗어나 경영적 접근법을 도입, 민간부분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이들 30대 공무원들이 거론하는 새로운 개념, 새로운 시각이 모두 업무에 당장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선 자신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이뤄가면 훗날 과장, 국장이 됐을 때 자신들의 뜻을 현실화 할 수 있다는 꿈이 있다.
관료도 기존의 관행과 인식을 부정하고 발상의 전환을 이뤄 새롭게 탈바꿈해야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조만간 실무를 하면서 느낀 점, 미래의 정책비전 등을 모아 「나는 한마리 누에가 되련다」는 제목의 수필집을 낼 계획이다.<남경욱 기자>남경욱>
◎공무원 분포/30대가 36% 최대비중 차지
93년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수는 86만5,140명. 이중 30대가 31만7,191명으로 전체의 36.7%에 달해 가장 비중이 크다. 다음으로는 40대가 22.4%(19만3,654명), 20대가 22.1%(19만1,054명)로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30대가 공무원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30대 공무원을 성별로 보면 남자가 23만5,723명으로 4분의 3이며 여자는 8만1,468명으로 4분의 1이었다. 또 남자의 경우 30대 전반(30∼34세)이 11만6,475명(49.4%), 후반(35∼39세)이 11만9,248명(50.6%)으로 비슷했지만 여자의 경우 30대 전반이 5만1,888명(63.7%), 후반이 2만9,580명(36.3%)으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이는 여자공무원들이 30대 중반이후 육아 등의 이유로 퇴직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30대 남자는 8급, 30대 여자는 7급이 가장 많았고 3급 이상의 고위직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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