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선거에 있어서 킹메이커 역할 절대적/승리후 실세 등장땐 전문성 결여 좌절 필연1881년 9월 미국의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한 청년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는 가필드 대통령이 미국선거에서 나타난 엽관제의 폐해를 거론하며 이를 철폐하려 하자 이에 대한 반항으로 나타난 사건이었다. 엽관제는 대통령 선거에서 도와준 선거 참모들에게 당선후 정부의 공직을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관직을 사냥하여 전리품으로 자기의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선거를 도와줌으로써 공직을 얻으려던 기대를 좌절시킨데 대한 분노가 한 젊은이로 하여금 대통령을 암살하게 한 것이다.
미국의 초기 정치발전사를 보면 정치와 행정의 영역구분이 불분명하고 선거와 관직의 쟁취가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었다. 미국의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은 1829년 연두교서에서 『정부의 관직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하여 정치인의 행정업무 수행의 당위성을 인정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극에 달했던 미국의 엽관제는 그 폐해가 심하여 선거가 관직을 쟁취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되었다.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소위 킹메이커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활약하고, 당선이 되고 나면 그들은 관직 임용이라는 자신들의 지분을 요구하게 되었다.
혁명가의 카리스마와는 달리 대중선거에서는 조직과 킹메이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대통령 후보자가 대중을 상대로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참신한 정책을 제시하고, 이상적인 정치철학을 논할 때, 킹메이커는 지하의 사조직을 동원하고, 선거자금을 운영하며, 다양한 선거전략을 수립하여 후보자의 당선을 돕는다. 후보자는 선거전에 돌입하면 마치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의해 행동하는 배우처럼 변모하게 된다. 선거유세 일정에서 시작하여 연설문, 의상, 제스처 등이 킹메이커들의 계산된 전략에 의해 마련된다.
심지어 농담까지도 적절하게 계산된 연기의 일부분이 된다. 선거전에서 후보자들이 지상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면 킹메이커들은 지하의 역할을 수행한다. 킹메이커는 당선을 위해서라면 악마와의 타협도 불사하는 과단성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후보자에게 킹메이커의 존재는 맹인의 지팡이처럼 절대적이며, 킹메이커 없는 선거전은 연출과 각본이 없는 배우의 모노 드라마와도 같다.
선거전이 끝나면 킹메이커의 역할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과 킹메이커 모두 승리를 자축한 다음 관계를 마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대통령은 그들이 가신이든 인척이든 가장 신뢰할 만한 측근으로 킹메이커를 의지하게 되고, 킹메이커들은 선거전에서의 공헌을 내세워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에 소위 실세로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행정 및 정책의 수행에 필요한 전문성을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통령의 딜레마와 킹메이커의 좌절이 운명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김영삼정권 창출의 킹메이커였다고 하는 김현철씨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정권말기에 나타나는 킹메이커의 야망과 좌절의 표상을 보는 듯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쟁취했던 3공, 5공과는 달리, 대중선거를 통해 정권이 창출된 6공과 김영삼정부에서 정권이 끝날 때마다 나타나는 킹메이커들의 좌절과 불행한 운명을 보며 우리는 정치의 무상함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이제 이전보다도 더욱 치열한 대통령 선거를 12월에 맞이하고 있다. 분명히 많은 킹메이커들의 활약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동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정권의 대통령은 선거전에서 승리한 다음 어떻게 킹메이커를 치하하고 이들이 정치나 행정의 표면에 부상하지 않도록 그 역할을 종결짓는가 하는데 고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필드 대통령이 암살된지 두 해가 지난 1883년에 미국에서는 엽관제에 의한 관직의 임명이 아니라 능력에 의한 공개시험제의 채택과 인사위원회제도의 수립을 규정한 펜들튼법이라는 최초의 공무원법이 제정되었다. 결국 민주화는 투명한 제도와 절차에 의해서만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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