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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탈도 많은 법정관리

입력
1997.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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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동결·세금감면 등 온갖 특혜에도 경영 정상화율은 30%에 불과/연줄따른 관리인·제한된 권한/법원의 사후관리 부실/그나마 중기엔 ‘그림의 떡’/문제점이 곳곳에 수두룩하다『회사 장래가 불투명해 그동안 몹시 고민해 왔습니다. 저의 살신으로 회사 이름으로 행해진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95년 12월 (주)논노의 법정관리인 유익재씨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해 업계는 물론 법조계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전무로 있다가 법정관리인이 된 그는 회사를 구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옛사주의 집요한 간섭으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옛사주는 법원의 허가없이 어음을 발행,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방법으로 거액의 자금을 빼돌려 해외로 달아나 버렸다.

대법원은 이 사건후 「회사정리사건 처리요령에 관한 예규」를 개정, 법정관리 신청 및 관리요건을 대폭 강화했지만 아직도 법정관리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미특수강과 (주)삼미 등 삼미그룹 2개 계열사가 18일 밤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는 올 1월 한보철강 등 한보그룹 4개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에 이은 것. 지난 8일에는 법원이 우성건설의 법정관리를 결정한 바 있다.

법정관리란 한마디로 자금난으로 파산위기에 처한 기업을 회생시키는 제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동시에 기업의 모든 채무는 동결되고 세금감면과 추가 금융지원 등의 「특혜」가 따른다. 법원이 벼랑 끝으로 내 몰린 기업에 내리는 최종적인 「패자부활」 조치인 셈이다.

이같은 법정관리제도와 관련, 일반인들의 관심은 기업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과연 얼마만큼이나 제대로 자구노력을 했느냐에 쏠려있다. 각고의 자구노력보다는 법정관리에 따르는 엄청난 혜택에 우선 기대보자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갖가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하는 기업이 너무 적다는 데서 비롯한다.

서울지법에 따르면 85년부터 96년 7월까지 146개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이중 43개 회사가 개시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가운데 경영정상화에 성공해 최종적으로 법정관리 종결 결정을 받은 회사는 13개로 30%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법정관리 여부는 무엇보다 회생 가능성을 따져 결정해야 하는데 성공율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제도운영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도의 취지로 보아 적어도 70∼80%의 회생률은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법정관리 제도에 어떤 허점이 있어 이런 결과를 가져 왔을까. 우선 거론되는 것이 법정관리인의 자격문제. 유능한 전문 경영인이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되기 보다는 옛사주나 채권단 등과 관련된 인물이 선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채권은행의 정상적인 승진절차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명예퇴직자가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남일총 연구위원은 『능력있는 전문 경영인이 법정관리인이 돼도 옛사주나 그와 연결된 사내 고위관리자들의 입김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K, S사의 법정 관리인은 최근 옛사주의 직·간접 통제를 받고 있는 고위간부들이 『점령군에게 협조할 수 없다』며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바람에 사표를 내야만 했다.

은행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경영주가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기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활용하기도 한다』며 『옛사주가 딴맘을 먹고 고의로 부도를 낸 뒤 재산을 빼돌리는 수단으로 법정관리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2, 3년간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진 대기업의 경우 옛사주가 회사 부동산과 거액의 차명 재산을 은밀히 빼 돌려 놓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사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D컨설팅업체의 W사장은 『법정관리 기업은 죽어도 옛사주는 살아 남는다는 게 업계의 통설』이라고 말했다.

법정관리인의 권한에도 문제가 있다. D은행 여신관리부 K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법원이 각종 경영단체나 공인회계사회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법정관리인을 선임하는 것까지는 좋아요. 하지만 법정 관리인은 회사를 전체적으로 통제할 권한이 부족해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할 서류에 도장찍는 일이 고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법원이 기업을 책임지고 살려내는 것도 아니잖아요. 법정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그만두는 사정에 이해가 갑니다』

더욱이 돌발적인 상황으로 파산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에 법정관리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자산규모 200억원, 자본금 20억원에 미달하는 회사의 법정관리 신청은 되도록 기각한다는 것이 법원의 내부적인 입장이다. 임채홍 변호사는 『법정관리를 악용할 소지를 없애려고 그런 내부기준을 둔 것 같다』며 『대기업은 회생 가능성이 별로 없어도 법정관리 신청이 잘 받아 들여지지만 중소기업은 회생 가능성이 있어도 혜택을 못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만 공익적 성격의 회사냐는 것은 재고해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문제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에 대한 법원의 사후관리가 철저하지 못한 것. 법원은 법정관리인을 선임하고 나면 월 1회의 보고를 통해서나 경영실태를 파악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는 물론 법원의 전문성 결여와 인력부족에서 기인한다. 서울지역 법정관리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민사50부. 현재 4명의 판사가 법정관리신청을 심사하고 법정관리중인 41개 회사를 감독하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서울지법의 한 관계자는 『회사정리 절차 신청이 들어올 때 현장을 한차례 둘러 보긴 하지만 그 이후에는 찾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회사 경영상태를 직접 점검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부실한 법정관리제도는 은행을 비롯한 채권자들에게도 심각한 부담이다. S은행의 한 관계자는 『법정관리의 저조한 회생률은 은행의 부실을 부채질하는 한 요인』이라며 『고질적인 부실경영에 따른 부도기업에 대한 법정관리 결정에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김성호 기자>

◎법정관리 결정은 ‘변호사 능력’/수임료 수억… 민사 수석부장출신 인기

법정관리는 기업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법원의 결정이다. 법정관리가 받아 들여질 경우 채권이 동결되는 등 혜택이 따르기 때문에 부도를 낸 기업은 법정관리 결정을 얻어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과 기업주는 무엇보다 변호사 선임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어서 변호사 수임료도 일반 사건에 비해 엄청나게 높아 진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이 보석이나 구속적부심 사건을 맡을 경우 성공률이 높아 수임료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법정관리 신청사건의 변호사 수임료는 이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법정관리 신청사건을 맡으면 단 한건으로도 억대의 성공사례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변호사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우성의 일부 계열기업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을 맡았던 T법무법인의 수임료는 1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그룹도 D법무법인과 법정관리를 신청한 계열기업별로 수천만원씩의 수임료 약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관리 결정이 실제로는 기업의 회생 가능성보다 담당 변호사와 기업의 능력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일부의 지적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변협의 한 임원은 『민사 수석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주로 법정관리 사건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로 사건이 어렵고 복잡해 경험이 없는 일반 변호사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문에 최근에는 대형법률회사인 법무법인에서 곧잘 법정관리 신청사건을 수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관리 신청은 각 지방법원에서 받으며 서울지법은 현재 민사 수석재판부인 민사 50부에서 전담한다. 이곳의 업무는 양도 많고 고난도이다. 판사들은 경제와 법률 모두에 정통해야 한다. 수백억∼수천억원의 자산을 가진 기업의 목숨이 이들 손에 달려 있다. 이곳을 거친 판사들이 장차 유능한 법정관리 신청사건 담당 변호사가 될 공산은 자연히 커진다.

재판부가 거래은행이나 채권단 기업주 등의 로비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청렴하고 강직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국 법정관리 신청사건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서울지법 민사 수석재판부 부장판사 자리는 법원에서 출세길의 하나로 통한다. 김덕주 전 대법원장, 이회창 신한국당대표, 안우만 전 법무장관, 박만호 대법관, 정지형 서울지법원장, 변재승 창원지법원장 등이 모두 이 자리를 거쳤다.<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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