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밝힌 실명제 보완책은 개략적인 방향만을 설명한 것이지만 실명제 보완보다는 오히려 실명제 파괴책이라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우리는 강부총리가 취임 제1성으로 실명제보완책을 들고 나왔을 때 적지않게 당혹, 그것이 현재의 경제난을 타개하는데 필요불가결한 방책도 아니요, 오히려 나름대로 정착돼 가고 있는 금융실명제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지금도 우리의 견해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이번 실명제 보완책의 목적은 현행의 엄격한 금융실명제를 완화, 지하자금을 중소기업지원자금이나 산업자금으로 양성화 하겠다는 것인데 우선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모르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일반적인 추산으로 지하자금이 국내총생산액(GDP)의 약 10%, 30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 금액은 제도금융권을 자유스럽게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실제로 어느 정도가 제도금융권에 정착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김영삼정권이 개혁의 상징적 핵심정책으로 추진했던 금융실명제에 대해 효과에 대한 확신도 없이 보완책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말로는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건드리지 않고 보완하겠다고는 하나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금융실명제와 그 보완책은 강부총리의 취지로 봐서는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것같다.
금융실명제는 궁극적으로 지하경제를 뿌리뽑아 제도권경제를 확산시켜 경제의 정의와 효율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행해서는 안되는 목표다. 강부총리가 추진키로 한 보완책은 금융실명제의 정의보다는 효율을 겨냥한 것인데 효율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정의만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금융실명제 보완책의 핵심은 사채자금이나 비실명자금 또는 실명미확인 자금 등이 양성화할 때 소위 도강료 셈인 과징금을 얼마로 하느냐 하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를 사문화시키지 않으려면 도강료를 높게 책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지 않는다면 국민에 대한 또 하나의 기만이 될 것이다.
또한 대통령선거의 해인 올해 우리가 우려해 온 정치논리의 경제논리 지배가 또다시 나타나는 것이 될 것이다. 금융실명제 보완론은 신한국당 등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겸직 경제부총리에 대해서 우려했던 점이 예상대로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돈세탁방지법 제정과 일정금액 이상의 현금금융거래 국세청통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를 흔들고 있는 당·정이 얼마나 실효성있는 제도를 만들지 의문이 간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용하려면 금융실명제보다 한발 앞선 거래실명제가 정착돼야 한다. 금융실명제부터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