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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들과 공직자들/정경희 언론인(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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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들과 공직자들/정경희 언론인(아침을 열며)

입력
1997.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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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글로 쓴 사람은 이헌영이었다고 한다. 1881년 박정양 어윤중 등 12명으로 구성된 「신사유람단」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엮은 글에서 미국 대통령에 언급하면서 「국왕의 명칭」이라는 주석을 달았다.우리의 대통령제도는 미국의 그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11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과는 다른 「상감마마」다.

미국 대통령은 엄격한 권력 견제장치에 포위된 연기자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거느리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다. 장관은 물론이고 차관보급 이상 고위 공무원을 임명하자면 의회에서 청문회라는 호된 심판을 거쳐 인준을 받아야 한다. 예산도 의회의 칼날같은 심사를 받아야하고, 무엇보다도 안으로 유권자나 밖으로 국제적인 여론의 압력속에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이 넘볼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의 하나는 그가 거느리는 직업공무원이다. 대통령이 내린 명령도 일선공무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법규나 관행에 맞도록 조금씩 변질되면서 원래 의도와는 상당한 거리가 생길 수 있다. 대통령도 약 400명의 백악관 관료조직에 포위돼 있는 허수아비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은 「독주·독단」이라는 비판을 듣지않고 「깜짝쇼」도 나올 수 없다. 대통령의 아들이 「소통령」이라는 법외의 직함을 얻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미국에서만도 아니다. 이 나라의 왕조시대에도 부왕의 명으로 공식 「대리섭정」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왕세자가 감히 국정에 참견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세자뿐 아니라 왕실의 종친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통이 무너진 것은 전두환정권 때였다. 국가권력이 집권자의 사유물화하면서 막대한 비자금이 그의 사금고에 쌓이고, 형제와 친인척들이 천하를 무대로 세도를 부렸다. 또 공무원은 집권자와 그를 둘러싼 세력을 위해 봉사하는 사병 집단화했다.

김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국민과 아버님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했다. 이로써 「소통령」의 진상은 국회의 국정조사특위에서건, 검찰의 재조사에 의해서건 밝혀져야할 차례가 됐다. 검찰의 재조사가 현철씨의 「뇌물」관련 여부에 국한된다면 『증거없음』으로, 이권·인사개입이나 국정간여 의혹은 「변호사법위반」으로 끝날 수도 있다.

국회의 국정조사특위도 만사를 「소통령」에만 집중시킨다면 얻는 것은 소통령을 주역으로 하는 흥미위주의 3류소설 밖에는 없을 것이다. 현철씨에 얽힌 모든 의혹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자칫 「소통령」을 벗기는 인간적 재미에만 치우친다면 보다 본질적이고 보다 큰 문제를 잊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소통령」에 봉사한 공무원·공직자들을 남김없이 색출해내고,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직자 사정파동 이상의 큰 파동을 각오하고 서라도 해야될 일이다. 우리의 과제는 공무원이 권력의 사병이 아니라, 법과 주권자인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는 공복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통령」을 도마 위에 올렸다는 만족감에 취해서 자칫 한보비리라는 초대형 비리의 핵심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5조원이 넘는 비리가 과연 「소통령」선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그 수수께기가 어떻게 결말지워질지 정신차려 지켜볼 일이다.

행여 『의혹은 여전히 남았다』는 비판·비난이 일지않도록 철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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