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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사서 고생…’/낫소 법정관리인 고일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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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사서 고생…’/낫소 법정관리인 고일남 사장

입력
1997.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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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보람이 눈앞에/경총인력센터 통해 인연/한푼이라도 비용줄이려 비서·운전수 없이 뛰어/7개월만에 월 1억 흑자/새 주인까지 찾아놓아법정관리 기업에 옛사주와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인 입장의 전문관리인을 공급하는 곳이 경영자총협회 고급인력정보센터.

대법원이 지난해 7월 예규를 개정, 법정관리인 추천 단체에 경총 고급인력 정보센터를 포함시킨 후 지금까지 모두 10명의 법정관리인을 배출했다. 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의 감사나 보전관리인 등으로 취업한 사람을 합하면 그 수는 174명에 이른다. 대부분 경영 경험이 풍부한 퇴직자들이다.

고급인력 정보센터에서 배출한 법정관리인 1호는 지난해 8월 경기 부천시의 법정관리기업 (주)낫소의 사장직을 맡은 고일남(61)씨.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외무부와 상공부 관료를 거쳐 무역진흥공사 부사장을 지냈다. 또 중소업체의 무역창구인 고려무역 대표이사, 경상북도와 민간이 함께 설립한 경북통상(주) 사장도 지냈다.

지난해 5월 퇴직 후 고급인력 정보센터에 등록한 것이 인연이 돼 법정관리인이 됐다. 그가 낫소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데는 낫소의 시장이 국내보다는 해외로 뻗어있어 통상 전문가가 적임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작용한 때문이다. 세계 4대 테니스공 제조업체로 축구공과 다른 스포츠용품을 생산하는 「낫소」는 세계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자금압박이 심해 92년말 부도를 내고 93년부터 법정관리에 들어 갔다. 한때 500여명에 이르던 종업원은 현재 70명선으로 줄어 기업의 쇠락을 실감케하고 있다.

옛사주와 인척관계인 전임 법정관리인에 대한 진정서가 법원에 제출되는 등 소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 회사의 관리인으로 선임된 고사장의 임무는 하루 빨리 경영을 정상궤도에 올리는 것. 『전임자가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처음 와보니 거의 파산 상태였어요. 월급도 3개월치가 밀려있고 자재 공급도 끊겨있어 암담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탁해 자재를 외상으로 들여와 우선 물건을 만들어 팔아 자금을 만들었어요. 올 1월에야 밀린 월급을 겨우 때맞춰 줄 수 있게 됐고 2월에 자재대금을 막았어요. 이제는 대리점과의 관계도 거의 정상을 회복했어요. 급한 불을 끈 셈이죠. 최근에는 해외수주도 받아 생산이 활발해 졌고 현재는 월 1억원정도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단기처방만으로는 회사를 살리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회사를 인수할 만한 업체를 찾아 팔방으로 뛰어 다녀야 했다. 『인수자를 찾아 전국을 헤집고 다녔어요. 회사 재무구조가 비교적 괜찮은 편이고 부채도 자산에 비해 많지않아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만한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제주도까지 오라가라 하더군요. 당시 자료를 들고 브리핑을 하러 이곳 저곳 떠도는 것이 일과였어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업체도 있었지만 인수조건이 복잡해서 애를 먹었어요. 옛사주의 주식이 완전히 정리가 되지않아 더욱 힘들었지요. 우여곡절 끝에 인수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 사장이지 그는 비서도 운전수도 없다. 욕심을 부릴 처지도 아니고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비용을 줄이려는 경영 방침의 결과이다. 『늘그막에 사서 고생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는 고사장의 웃음에서는 한 중소기업의 회생에 오랜 경험을 바치고 있는 노년의 「보람」이 느껴졌다. 『낫소만 살아난다면…』하는 유일한 바람도.<조재우 기자>

◎법정관리 절차/신청→재산보전 처분→법정관리 결정→관리인 선정→6개월∼1년 걸려

법정관리는 파산위기를 맞은 기업의 채무를 한시적으로 동결해 회생의 길을 열어주는 제도로 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은 회사나 주요 주주 또는 채권자 등이다.

법정관리 신청이 들어오면 법원은 회사대표나 경리담당자와 은행관계자 등에 대한 신문절차를 거쳐 우선 「재산보전 처분」 여부를 결정한다. 이 결정은 대개 1주일 이내에 내려진다.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에는 재산보전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해당기업에 파산 또는 청산 절차를 밟게 한다.

재산보전 처분이 내려지면 모든 채무가 동결돼 회사는 일단 빚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법원은 재산보전 처분을 내린 후 공인회계사 등으로 조사위원을 선임해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법정관리 개시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보고서 작성에만 2, 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최종 결정까지는 흔히 6개월∼1년이 걸린다. 우성건설의 법정관리 결정에는 1년이 더 걸렸다.

재산보전 처분이 내려졌다 해도 법정관리 신청은 기각될 수 있다. 한보철강의 경우 재산보전 처분은 내려졌으나 법정관리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경제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 들여질 가능성이 크나 부채 비율이 너무 높아 기각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법정관리를 결정하면 법원은 회사 경영과 자금관리를 담당할 관리인을 선정하는데 이때부터 잡음이 따른다. 옛사주의 측근이 임명될 경우 법정관리기간 중 재산을 빼돌려 회사를 결국 파산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과거에는 옛사주의 주식을 3분의 2만 소각토록 해 다툼이 자주 일어났으나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예규를 개정해 부실경영 등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제3자 인수를 촉진하기 위해 옛주식 전부를 소각토록 했다. 법정관리 도중 부도를 낸 논노의 경우 채권단이 법원을 상대로 「법원이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도 했으나 패소했다. 채권단쪽에 가까운 인물이 임명되더라도 회사의 이익금을 빚갚는 데 몰아넣는 예가 있다.

법정관리인은 채권단 등과 협의, 회사정리 또는 회생계획을 세우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이를 시행한다. 법정관리인은 통상 500만원이 넘는 비용에 대해서는 일일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사용해야 해 자율성이 떨어진다. 법정관리 도중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은 「폐지」결정이 내려지고 운영이 정상화할 경우에는 「종결」결정이 내려진다. 논노의 경우 폐지 결정이 내려졌으나 채권단에서 불복, 항고한 상태다.

◎개선방안과 대안/옛사주 탈법 감시할 위원회 구성/관리 종결·폐지절차보다 명확히/변제방법만 규정 ‘화의제’ 활용을

전문가들은 『법정관리 기업의 회생이 늦어지면 결과적으로 그만큼 국민부담이 커진다』면서 현행 법정관리제도의 문제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원의 실질적 관리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점인 옛사주의 탈법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전문가들로 감시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한 회계감사로 변칙 경영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정관리의 종결 및 폐지 절차를 보다 명확히 해 「부당한 이득」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법정관리 도중에 규모가 더 큰 회사를 인수할 정도로 경영이 제궤도에 올랐으면서도 법정관리 상태를 유지해 이득을 본 H기업 같은 예가 있기 때문. 「향영 21C 리스크컨설팅」 이정조 사장은 『경영상태를 감안해 법정관리를 조기 종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반면 경영상태 호전 기미가 없을 때는 과감히 법정관리 폐지를 결정해 청산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의제도를 현행 법정관리제도의 대안으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무성하다. 화의제도는 법원이 부도기업의 기술력과 사업전망 등을 평가, 기업을 파산처리하는 대신 기업과 채권자간에 채권 변제방법을 별도로 정하도록 하는 것. 옛사주가 계속 경영을 맡고 법원이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정관리와 다르다.

화의가 성립하려면 채권단 4분의 3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회사측의 자구노력과 회생 가능성을 평가받아야 한다. 화의제도의 최대 장점은 회사사정을 잘 아는 옛사주가 경영을 책임지기 때문에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높다는 것.

기계설비공사 전문업체인 「대일공무」는 화의를 통해 회생의 길을 걷고 있는 좋은 예이다. 연매출액 500억원 규모의 이 회사는 지난해 2월 재산보전처분을 받았으나 채권단과 주거래 기업인 (주)대우의 지원약속으로 지난해 8월 화의개시 결정을 받았다. 당시 채권단의 97%가 화의에 찬성했다. 이에따라 자산규모 268억원이던 대일공무는 총 부채 392억원중 은행대출금 170억원은 연 9%의 이자로 7년간 분할상환하고 나머지 일반부채는 이자없이 원금만 「3년거치, 7년 분할 상환」조건으로 갚기로 했다.

법원 관계자는 『화의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아 아직은 활성화하지 못한 상태지만 신청이 늘고있는 추세』라며 『채권자들이 취지를 잘 이해하면 화의제도가 법정관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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