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한마음·기술개발 부실회사 되살려냈다/종업원들 체임 참으며 채권자에 눈물 호소/관리인도 사재 담보 제공/14년새 매출 10배 증가/항공기소재 ‘국제적 명성’알루미늄 소재업체 (주)삼선공업 직원들은 요즘 신바람이 난다. 83년 신규설비 과잉투자에 따른 부도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14년. 이제 곧 회사가 부실기업의 멍에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두레그룹(회장 김을태) 계열사인 이 회사는 최근 법정관리의 조기 종결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법원이 법정관리 결정을 내릴 때 나온 정리계획안에 따른 종결 시점은 99년 10월. 법정관리 업체로서는 보기 드물게 의욕적인 기술개발과 정확하고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국내 굴지의 알루미늄 소재업체로 되살아 난 자신감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법정관리 첫해인 83년의 10배를 웃도는 67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플랜트 수출과 항공기 소재 개발로 국제적으로도 기술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외국의 알루미늄 소재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으레 찾아와 견학할 정도이다. 현재 구로·반월·창원공단에 있는 3개 공장에서 500여명의 종업원이 신나게 일하고 있다.
『82년 3월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가 시작되기까지 1년여동안 종업원들이 겪은 고통은 엄청났어요. 회사재산을 차압하려는 채권자들을 부여잡고 「우리가 벌어서 갚겠다」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거래처를 방문하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지만 「우리 물건좀 사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박찬갑 총무부장은 『은행과 거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받기위해 거래처에 통사정을 해야 했다』며 『그 돈을 우선 자재구입 및 영업활동에 써야 해 종업원 급여는 나중이었지만 모두들 잘 참고 견뎌주었다』고 감회에 젖었다.
83년 8월 회사정리 절차가 시작되면서 법정관리인으로 들어 온 새 경영주는 김을태 현 회장. 『비효율적인 조직을 대폭 축소, 통폐합하고 생산시설을 개보수해 양산체제에 들어 갔어요. 종업원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여건이 허락하는 한 근로조건도 개선했습니다』
당시 두레상사 사장이던 김회장은 금융거래 조기 정상화를 위해 사재를 담보로 내놓는 등 회사 살리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생산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웠고 일이 끝난 후에는 직원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회사가 살 길은 신기술 개발밖에 없다고 판단, 신소재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및 대학연구소와 공동으로 VTR 헤드드럼 등 고품질 알루미늄 소재 개발에 성공하는 개가가 잇따랐다. 세계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 록히드 등에서 항공기 소재생산 인증을 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 회사의 경영 정상화에는 원만한 노사관계가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석 노조위원장은 『그동안 여러차례 어려운 고비를 맞았지만 노사가 한 발짝씩 양보해 잘 넘겨왔다』며 『제2의 도약을 위해 하루 빨리 법정관리 기업이라는 딱지를 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10개사 회생시킨 이순국 회장/부실기업 정상화 ‘마이더스의 손’/법정관리인은 ‘얼굴마담’이어선 곤란/‘회사 살려야 내가 산다’ 신념 가져야
『법정관리 기업의 회생은 전적으로 법정 관리인의 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관리인이 순전히 월급만 받아가는 얼굴마담이어서야 곤란하죠. 「이 회사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법정관리 기업이나 부도업체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흑자기업으로 키워 내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 재계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신호그룹 이순국(55) 회장. 그는 법정관리 기업의 회생에는 법정관리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처음 법정관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82년 신호제지 전신인 삼성특수제지의 법정 관리인으로 선임되면서부터. 77년 은행의 권유로 부도가 난 동방펄프(현 온양펄프)를 인수해 1년만에 흑자로 바꾼 능력과 경험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 이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되거나 제3자 인수를 통해 빈사의 기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것만도 한국강관 등 10개 업체에 이른다.
「부실기업 조련사」의 비법은 의외로 평범하다. 『법정관리까지 갔다면 기업의 문제점이란 문제점은 다 드러난 것 아닙니까. 문제점을 해결할 자신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사재를 털어넣을 각오로 달려 드는 거죠. 남보다 2, 3배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꿈속에서 자주 이사회를 열 정도였어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공인회계사인 그는 해박한 회계지식과 더불어 자금조달, 투자결정, 추진력 등에서도 남달랐다. 『기업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갖고 있으므로 함부로 죽이는 것은 범법행위』라는 독특한 경영철학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기업을 죽이면 주주는 물론 근로자와 고객이 덩달아 피해를 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정 관리인은 비용절감 등을 통해 경영 내실화를 서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종업원의 인화단결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구사주의 영향력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야죠』
회사정리 절차 문제로 20여년간 법원에 드나 든 그는 『법정 관리인은 해당 기업의 재무구조를 꼼꼼하게 파악한 뒤 부실요인을 면밀히 찾아 내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리계획안 작성시 그 기업의 채무부담 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정관리중 부도 논노 납품업체/법원 믿고 납품 우린 어떡합니까/피해업체 60%정도가 문닫아
『법정관리란 게 도대체 뭡니까. 법원이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신청을 받아들인 것 아닙니까. 또 회사 경영실태를 꼼꼼하게 관리하도록 돼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회사가 부도를 내면 우리같은 중소기업은 어떡합니까』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서 종업원 150여명의 신사복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우양어패럴 사장 최상근씨는 법정관리 얘기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95년 법정관리중이던 의류업체 논노에 신사복을 납품한 뒤 받은 어음이 부도처리돼 6억8,000여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이 회사 등 채권단 8개업체는 지난해 2월 『법원이 경영실태 확인과 감독을 소홀히 해 피해를 봤다』며 법원을 상대로 10억7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불경기인데다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혀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불가능했던 것이 논노의 부도원인이지 법원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국가(법원)가 보증하기에 안심했죠. 납품한지 30∼40일만에 대금을 6, 7개월짜리 어음으로 받았어요. 은행에서도 법정관리 기업은 부도가 나지 않는다고 장담하더군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죠』
최씨는 법정관리중이던 논노의 부도여파로 1,300여개의 중소 하청·납품업체가 피해를 봤고 그 가운데 60% 정도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관리의 제도적 모순이 엄청난 비극을 낳았다』고 강조했다.
『채권자들이 동의하긴 했지만 법정관리 기업은 상상도 못할 「특혜」를 누리는 거예요. 빚쟁이들이 아무소리 안하죠, 채무가 동결되고 세금도 감면받죠. 그런데도 부도가 난다면 뭔가 법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최씨는 『법정관리를 규정한 현행 회사정리절차법의 가장 큰 문제는 만에 하나 법정관리중 부도가 났을 때 그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이라며 『법원이 결정을 내리고 사후관리를 하고 있으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따져 물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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