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절망 교차 ‘기다림의 나날’/2층 5평방서 매일 20장씩 집필·독서·명상으로 소일/창문마다 방탄철판·식사 자체마련 안전·건강 챙겨황장엽(74)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김덕홍(59) 노동당 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의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체류 35일은 희망과 절망이 시시각각으로 교차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중국의 망명허용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북한요원들의 습격위협, 방탄철판이 붙은 좁은 공간에서의 단조로운 일상, 북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도청을 우려해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는 등 불안과 초조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고령의 황비서를 지탱케 해준 것은 뒤틀린 지난 날의 삶을 정리하고 남은 여생이나마 민족의 장래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사명감과 의지라고 할 수 있다.
황비서는 영사부 2층 5평방에서 주로 집필과 독서, 명상으로 소일했다. 황비서는 그동안 매일 원고지 20여장씩을 집필했다. 집필한 내용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신이 틀을 잡았던 주체사상의 수정이나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 등으로 짐작된다.
영사부 체류기간에 황비서는 체중에 별다른 변동이 없었고 혈압도 120∼70을 유지하는 등 고령임에도 건강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식생활은 평소 습관대로 아침식사는 하지않고 점심과 저녁도 제공되는 양의 4분의 1정도씩 소식을 했다.
대사관측은 처음에는 시내 한국음식점에서 한식을 주문해 제공했으나 언론에 공개된후 불상사에 대비, 대사관 직원집에서 마련했다. 최근에는 영사부 자체에서 해결했는데 명란젓, 멸치, 김 등이 반찬의 주종이었다. 황비서는 버터와 빵, 영양갱 등을 좋아해 간식으로 제공받았다.
한국대사관측은 황비서의 건강과 함께 망명처리가 지연되는데 따른 심경변화를 가장 우려했다. 이에 따라 국내 신문이나 잡지 등은 일절 제공하지 않았고 TV시청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차례 황비서를 접촉한 정종욱 대사는 『그분은 망명순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황비서는 『나의 망명에는 분명한 목표와 동기가 있다』고 우리측 관계자를 만날때마다 강조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황비서가 북한 식량을 얻어내기 위해 위장귀순했다는 설에 대해 정대사는 『수차례 만났으나 그런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분에 대한 인격모독』이라고 강조했다.
황비서의 영사부 체류기간중 최대 과제는 안전문제였다. 황비서와 김덕홍이 머문 2층에는 창문마다 방탄철판이 설치돼 만일의 저격가능성에 대비했다. 또 영사부 인근 외국공관, 아파트옥상 등은 매일 점검했고 영사부로 통하는 다섯군데의 골목입구는 시멘트와 차량으로 차단됐으며 바닥에는 철심을 갖춘 장애물을 설치했다.
그리고 영사부 주변에는 장갑차 5대와 물대포 등까지 대기시키고 나무에 감시 카메라 6대를 설치해 주변 동향을 샅샅이 감시해왔다.
황비서는 영사부 생활 초기에는 필요한 사항에 대해 진술서를 썼으며 비디오 촬영에도 응했으나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집필에만 몰두했다. 한국대사관 직원들과도 친밀해져 서로 눈인사도 하고 가벼운 대화도 나눴다. 황비서는 술 담배는 원래 하지않으며 하루일과는 상오 5시 기상, 밤 11시까지 활동하고 6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꼬장꼬장한 학자스타일인 황비서는 한번 한 말은 중언부언하지 않고 매우 논리적인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 그와 대화를 나눈 인사들의 전언이다.
황비서는 지난달 17일 북한 외교부의 「변절자여 갈려면 가라」는 성명을 전해듣고는 『남한도 조국이고 북한도 조국이며 남북한 인민이 모두 같은 민족인데 내가 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변절자인가』라고 반박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비서는 비록 3국을 경유한 한국행이지만 망명신청 35일만에 망명의 목적을 이뤘다. 평양의 이데올로기, 주체사상의 1인자인 황비서가 서울에 가서 한반도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지 주목된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베이징=송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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