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봉제 휴폐업자리 인쇄업체 입주 ‘내수공단화’「태림모피직영상설매장, 한일합섬구로직영점, BYC상설할인매장, 진도모피직영매장…」 요즘 구로공단에는 도심의 쇼핑센터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조명의 쇼윈도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구로공단에 입주한 섬유업체들은 1∼2년전부터 앞다투어 재고처분을 위해 공장 한 모퉁이에 세련된 디스플레이가 돋보이는 판매장을 개설, 다른 공단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업체들이 일반인의 발길도 한산한 이곳에 판매장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 가격경쟁력 상실로 수출판로가 막힌 제품을 원가에라도 처분해야 하는 딱한 사정때문이다. 한 매장의 관계자는 『당장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물품창고를 헐어내 할인매장을 개설했다』면서 『요즘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어나 장사도 그런대로 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64년 공단이 조성된 이후 「수출입국」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구로공단. 그러나 구로공단은 이제 더 이상 「수출공단」이 아니다.
90년대들어 고지가 고임금 고비용의 「3고」에 노사분규까지 겹치면서 수출주력업종이던 섬유·봉제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빠져나가 구로공단은 이제 「수출업체가 없는 수출공단」으로 전락했다.
실제로 구로공단은 88년까지만 해도 41억달러를 수출했으나 매년 감소추세가 이어져 지난해에는 33억달러를 수출하는데 그쳤다. 이에따라 80년대에는 국내 전체 수출액의 10%안팎을 도맡았던 구로공단의 수출비중도 95년에는 4.1%, 지난해에는 2.5%로 급전직하했다. 2∼3년내에는 수출기능을 아예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주요수출업체의 탈출러시가 이어지고 있는 구로공단은 국내산업의 공동화현상과 닮은 꼴이다. 섬유업체의 한 관계자는 『구로공단에는 비싼 공장부지가 팔리지않아 마지못해 눌러앉아있는 수출업체와 사업상 서울지역내에 공장을 두어야 하는 내수업체만이 공단을 지키고 있다』면서 『이들도 기회만 있으면 공단을 떠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수출업체들은 국제시장의 취약한 경쟁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요품목을 내수로 전환하고 있다.
이같은 공동화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무전기·무선전화기 전문생산업체인 맥슨전자는 80년대말부터 임금상승을 견디지 못해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국가로 대부분의 수출생산라인을 이전했다. 현재 구로공단에는 300여명의 근로자가 휴대폰을 조립하고 있으나 대부분 내수용이다.
맥슨전자와 함께 3공단에 위치한 경인전자 대륭정밀 등도 주요생산라인을 해외로 옮겼다. 특히 플라스틱생활용기제조업체인 코멕스의 경우 90년대초 수출용품을 생산하기 위해 부도로 파산한 업체의 부지를 법원경매를 통해 매입, 입주했으나 채산성이 맞지않아 생산라인 확충을 포기하고 2,000여평에 달하는 부지를 사무실과 물류창고로 쓰고 있다.
맥슨전자 이몽우 상무는 『구로공단의 생산조건으로는 단 하나의 제품도 해외에 내다팔 수 없다』면서 『경쟁력이 더 이상 추락하기 전에 나머지 생산라인을 뜯어내 공기나쁘고 교통불편하고 사람구하기 힘든 구로공단을 떠나자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고 밝혔다.
섬유 봉제 완구업체들이 휴폐업한 자리에는 최근들어 내수업종인 인쇄공장이 대거 들어서 구로공단이 「내수용 공단」으로 바뀌는 기현상까지 빚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인쇄업체는 90년대초까지는 10여개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말에는 88개로 늘어나 397개 전체입주업체중 22%를 차지, 섬유업체(20.7%)를 앞지르고 있다.
1공단에 최근 임대입주한 S인쇄업체 대표는 『소음진동규제 등으로 일반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에서는 공장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이곳에 입주했다』면서 『그러나 구로공단은 임대료가 너무 비싸 수도권 등에 괜찮은 공장이 나오면 다시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로공단은 내수업체가 생산활동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큰 3류공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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