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이후 눈부신 진출/사시 합격자의 10%내외 판사직에 많이 몰려/인맥활용 필요한 변호사는 다소 불리미국은 국가 수립 191년만인 81년 첫 여성 연방대법원 판사 산드라 데이 오코너를 배출했고 우리나라는 헌정사 47년만인 95년 첫 여성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이영애(49)씨를 냈다. 이태영씨가 여성으로서 51년 처음 법조계에 발을 디딘 후 46년이 지난 97년 현재 여성법조인 수는 218명(사법연수원생 포함). 전체 법조인 6,583명 가운데 3.3%에 불과하다. 그러나 79년까지 사법시험에 합격한 여성이 불과 11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80년대 이후 진출이 눈부시다.
52년 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여판사 1호 황윤석씨 이후로 70년 강기원(55) 황산성(53) 변호사가 뒤를 이었고 71년 이영애씨는 수석으로 합격했다. 여성합격자는 80년대 중반부터 늘기 시작해 94년에는 10%를 넘었다. 특히 이 해 여성 응시생의 합격률은 2.6%로 남성응시생의 합격률 1.4%보다 크게 높아 화제가 되었다. 87(김소영) 89(이선애) 91년(김은미)에도 수석합격을 여성이 차지했다. 올해 사법연수원생은 1년차 35명(7%) 2년차 27명(8.6%)이다. 사법연수원 이인재 교수는 『여성들은 연수원 성적이 대체로 좋다. 남성들보다 성실한 점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연수원 수료후 진출하는 분야는 고시성적과 연수원성적에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여 결정하기 때문에 성차별을 논하기 힘들다. 법조인이 가장 선호하는 분야인 판사직에 여성들이 몰려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여성판사는 91명(6.4%)인 반면 여성검사는 16명(1.5%) 여성변호사는 49명(1.5%)이다. 남자 법조인들이 변호사―판사―검사 순으로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법조계에서 남녀평등이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 82년에 첫 여성검사(조배숙)가 나왔으며 86년에는 판사로 전보된 조씨에 의해 여판사에게 영장당직을 맡기지 않던 관행도 깨졌다. 조씨는 88년부터 대구지법에서 근무하여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에는 여판사를 배치하지 않던 관행마저 깨버렸다. 95년 개업, 현재 여성변호사회 회장인 조배숙(39) 변호사는 『당시만 해도 법원내에서는 여성판사가 배석하면 부장판사들이 「체력이 부족해 안될 것」이라고 불안감을 표시하기도 했다』며 『최근들어 여성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검찰에서 수사를 맡는 데 차이를 두지않는 등 남녀차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여성이 못 간 곳은 검찰 특수부 정도. 이에 대해 서울지법 전효숙(46) 부장판사는 『이제까지 여성 법조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승진이나 배치의 차별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의미없다』고 말한다.
여성변호사가 남성들에 비해 어려운 점은 인맥과 고객과의 신뢰성문제. 남성은 동창이나 선배 등 사회적으로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있으나 여성들은 이같은 인맥을 가지기 힘들다. 또 형사사건의 고객들은 여성 변호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변호사로 진출했어도 여성들은 대형 법률회사에 스카웃되는 사례가 적었다. 일반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편견이 없어지고 스카웃되는 여성의 수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한 변화다. 세종합동법률사무소에는 89년 입사한 심인숙 변호사를 필두로 4명, 김&장법률사무소에는 94년 처음 진출한 조윤선(31) 변호사 외에 3명(국내 면허)이 더 있다.
지적재산권문제를 주로 다루는 조변호사는 『80년 이후 여성들의 진출 추세로 보아 앞으로 10년후면 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진출 그 자체가 차별을 깨는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도전하라』고 권한다.
◎국제법무심의관실 최윤희 검사/검사부부·공안담당 여성 1호/‘공법분야의 이태영 박사’가 꿈
첫 법무부 근무 여성검사, 첫 여성 공안·기획 전담 검사, 1호 검사부부.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최윤희(33) 검사는 「최초」에 관한 이력을 꽤 갖고 있다. 『검사직은 직접 수사를 하고 사건의 실체에 가장 접근할 수 있어 생동감있고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최검사는 4번째 여성검사. 91년 임관시 여자동기생 11명 중 유일한 검사 지망생으로 시선을 끌기도 했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부산지검, 인천지검 등에서 7년동안 재직해 현직 여성검사로는 서울지검 북부지청 조희진 검사(8년)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 근무했다.
최검사는 『처음 부임했을 때 「여자 후배들을 위해 잘 해야겠다」라는 부담감을 많이 가졌다』고 말한다. 서부지청에서는 소년사건 전담이었으나 살인 절도 강간 방화사건 등 일반 강력사건도 가리지 않고 해내야 했다. 『서부지청 시절 폭력사범으로 들어온 10대 청소년이 기억에 남는다. 죄질이 나빠 재판에 회부해야 했는데 어린 나이를 감안, 형량을 최대한 낮추어 기소유예를 받게 한 적이 있었다. 후에 그 학생이 감사한다는 편지를 보내와 검사를 선택한 데 보람을 느꼈다』 부산지검에서는 주로 지적재산권 문화재 사범 사건을 맡았고 인천지검에서는 노사분쟁이나 시국사범을 다루었다. 올 3월부터 수사 일선에서 떠나 외교 통상업무와 관련하여 정부 타부서에 법률적 조언을 하고 국회에서 새 법을 만들 때 법률적 검토를 하는 것은 물론 외국과의 민사 사법 공조업무 등을 맡고 있다. 최검사는 『흔히 사법부와 검찰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여성들의 진출에 대해서는 오히려 진보적』라며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는 동질감이 남녀를 차별하지 않게 하는 것같다』고 밝힌다.
『수사일선에서 일할 때는 한달 평균 200∼300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해 밤샘도 잦았지만 검사일이 좋다』는 최검사는 여성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높이는 데 관심이 많아 「공법분야의 이태영」되는 것이 꿈이다.
91년 고시 30회 동기인 오정돈(인천지검 특수부) 검사와 결혼, 부부검사로 화제를 모았던 최검사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과 결혼한 것이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고 자랑한다. 세 살된 딸은 함께 사는 친정부모님들이 돌봐 주신다.
법조계에 진출하려는 여성들에게 최검사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하는 「따뜻한 가슴」과 사사로움에 이끌리지 않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기 바란다』고 당부한다.<노향란 기자>노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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