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이 악을 까발길 때 까발긴 악은 까발겨진 악보다 선한 것인가. 다른 악보다 덜 나쁜 차악이라고 해서 그 악은 용서되어지는 것인가.요즘 우리 사회는 악과 악의 연쇄가다. 부도덕과 부도덕이 손과 손을 맞잡고 윤무를 춘다. 꼭 뫼비우스의 띠 같다. 뫼비우스의 띠는 기다란 장방형의 종이를 한번 꼬아서 끝과 끝을 연결했을 때 생기는 곡면이다. 이 띠는 앞면과 뒷면의 구별이 없고 좌우의 방향을 정할 수 없다. 정말 이 띠처럼 표리를 알 수 없는 배배 꼬인 세상이다. 어디까지가 선이며 어디부터가 악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선악의 방향이 혼동된다. 온 나라가 이 지경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라는 선인과 악인을 구별할 수 없을 때 망한다」고 한다.
대통령의 아들이 인사개입 등으로 국정을 어지럽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법에 걸리고 안 걸리고에 앞서 이것은 국치다. 법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죄라면 그것은 더 큰 죄다. 있을 수 없는 죄이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으로서도 자식의 허물은 아비의 허물일 뿐더러 자식을 잘못 관리해 국기를 문란케한 것은 나라를 잘못 관리하는 것이다.
때마침 인사개입 통화내용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어 수훈을 세웠다. 그 물증이 아니었으면 의혹이 그냥 묻혀버렸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공이 크다고 해서 다 장하다고만 할 것인가. 여기에 혼란이 생긴다.
그 테이프를 녹화한 사람은 의사이기 이전에 의사다. 의사는 양심의 표본이다. 그리고 환자의 비밀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 테이프는 진료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비뇨기과 병원에 환자 몰래 CCTV가 설치된 것부터 불순하다. 처음부터 다른 목적에 이용하려는 고의성이 있다고 봐야한다. 그 목적이 설령 공익이라 하더라도 의사로서의 윤리를 벗어난 행위는 정당화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 목적이 공분을 가장한 사분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드러났다. 변심한 동기가 순전히 개인 차원의 보복심에서다. 이 보복이라는 것 또한 정당한 요구 아닌 부당한 청탁이 거부된데 대한 반감에서다. 의사로서의 진실성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한 개인에 대한 배신이라기보다 언제든지 그런 병원의 환자일 수 있는 온 시민에 대한 배신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민들로부터 그런 불신을 받게된 모든 병원의 의사들에 대한 배신이다.
목적이나 동기가 부도덕할 때 그 행위는 결과가 아무리 공익적이라 하더라도 도덕화되지 못한다. 공익성 여부가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면 모든 공익은 부도덕에 악용되기 쉽다.
그 의사의 부도덕은 의사로서의 윤리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윤리문제다. 불신과 배신으로부터 인간사회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의료단체의 징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온 사회인의 이름으로 규탄되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문죄는 또 별개다.
의사뿐 아니라 경실련의 한 간부의 태도 또한 어리둥절하게 한다. 경실련은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민단체요 게다가 그 간부는 부정부패 추방운동의 책임자다. 그런 사람이 비디오 테이프를 훔친 것은 성경을 읽기위해 촛불을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정당화되지 못한다. 더구나 그 테이프를 오랫동안 감추어온 것은 훔친 의도를 의심케 한다. 공익단체의 공익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테이프의 공개가 목적한 공익이 이 비도덕성 때문에 빛바래진다. 훔친 테이프가 장물이라면 온 국민을 장물아비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인은 나쁜 방법으로 부정에 이기는 것보다는 지는 것을 기뻐한다」는 말도 있다. 의사나 경실련 간부나 그 행위가 법에 위배되건 않건간에, 그것이 아무리 사회에 크게 기여했더라도, 부도덕은 부도덕대로 지탄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대통령의 아들 사건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비도덕성의 퍼레이드를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의 아들을 포함해서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양심의 전위들이 비양심의 전열에 도열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난국이다.
다시금 한탄하고 싶어진다. 비양심을 캐내는 손이 왜 이렇게도 비양심적인가. 부정을 들추어내는 손이 왜 이렇게도 부정한가. 불의를 찾아낼 정의의 손은 어디 숨었는가.<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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