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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썰물 ‘수출메카’ 간판만 남아(무너지는 구로공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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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썰물 ‘수출메카’ 간판만 남아(무너지는 구로공단:상)

입력
1997.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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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분양가·임금 열악한 기업환경 “생존 불가능”『구로공단에서는 더 이상 기업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 못해 눌러앉아 있을 뿐이지요』 서울 구로3동 구로공단 3단지에 자리잡은 중견 전자부품조립업체인 K사 임원이 던지는 푸념이다.

이 회사에 들어서면 폐가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70년 공단조성 초창기에 이곳 2,500여평부지에 입주한 이 업체는 최근 「생존」을 위해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했다. 90년대초만 해도 한때 1,500여명에 이르던 근로자수는 현재 350여명으로 급감했고, 생산라인이 빠져나간 자리는 3년째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공장을 아예 팔아치우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고 해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땅값이 평당 500만원을 넘고 각종 생산여건이 갈수록 열악해져 입주희망업체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동남쪽 시경계 60만평부지에 자리잡고 있는 구로공단에는 K사처럼 생산라인이 멈춘 업체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수출한국」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구로공단이 쇠잔해가는 한국경제와 함께 몰락하고 있다. 폐업과 부도, 공장이전이 잇따르면서 구로공단은 수출전진기지라는 옛 명성을 잃은지 오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구로공단 근로자는 87년만 해도 7만3,195명에 달했으나 이후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면서 95년에는 4만1,645명, 지난해말에는 3만9,177명으로 급감했다. 80년대후반 입주한 외국업체들은 대부분 철수했고, 국내업체들도 해외진출로 활로를 찾고 있다. 입주업체는 2월말 현재 397개사로 숫적으로는 큰 변동은 없지만 생산업체의 규모가 갈수록 영세해지고 회사간판은 번듯이 걸려있지만 내부는 텅빈 업체가 수두룩하다.

구로공단의 몰락은 국내경제의 쇠퇴를 가져온 「고비용저효율구조」가 낳은 전형적인 결과라는 것이 이곳 업체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구로공단의 분양가는 지방공단의 10배수준에 달해 기업들이 공장신설이나 매입을 엄두도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고임금의 부담이 겹쳐있다.

뿐만 아니라 공단내 도로율은 13.5%로, 서울시 전체도로율(19.9%)보다도 낮을뿐 아니라, 주차장률도 0.04%에 불과하고 물류시설을 아예 없어 물류여건도 최악이다. 이에더해 서울지역에 위치한 구로공단에는 공업배치법 등에 따라 기존 대기업공장의 신·증설과 타용도로의 전환도 극도로 제한돼있어 생존을 위한 「자기변신」도 불가능하도록 돼있다.

구로공단의 몰락은 인근지역의 상권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는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근로자들이 떠나면서 70년대와 80년대 근로자들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가리봉동 중심의 「벌집(2∼4평짜리 근로자용 주거지)」이 완전히 사라졌고, 한때 15평을 기준으로 권리금만 7,000만원을 넘어섰던 이 지역의 상권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구로공단 1단지 인근에서 영업중인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리봉 5거리에서 성업중이던 대부분의 술집들이 안양이나 인덕원 등으로 옮겨갔다』면서 『수요가 끊기고 경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권리금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구로공단이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이곳의 대표적 장점으로 꼽히던 「사람 구하기 쉽다」는 말도 이젠 옛얘기가 됐다. 1단지에 위치한 옛공단본부 앞 게시판에는 지금도 구직자를 찾는 구인광고들이 수개월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4년전 이곳에 입주한 D금속 총무과 관계자는 『게시판을 통해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학원이나 학교를 찾아다니며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공장문을 닫아야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구로공단의 몰락은 이곳에 입주한 은행에서도 쉽게 감지된다. 이곳의 은행들은 해외나 지방으로 이전하는 업체들의 은행거래관계를 해당지역 지점에 이관해주는 일이 주업무로 바뀌었다. 1공단입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구로동지점 관계자는 『구로동지점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국 350여개 지점중 수신고 1, 2위를 다투었는데 이제는 10위권밖으로 밀려났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김동영·변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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