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덕여왕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여왕이자 김유신과 김춘추라는 명장을 잘 활용하여 통일의 기초를 닦은 훌륭한 임금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평생 처녀로 살았다고 되어있지만 야사에는 결혼을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위서로 분류되긴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무열왕의 아버지 용수, 작은 아버지 용춘과 각각 혼인을 했으나 소생은 없다고 쓰여있다. 창녕 조씨의 족보에는 선덕여왕이 시조인 조계룡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은 것으로 되어있다. 말하자면 창녕 조씨는 선덕여왕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한데 조계룡보다 유명했던 선덕여왕의 성은 자취도 없다.
최근 들어 여성운동가들이 어머니의 성도 함께 쓰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제도가 핏줄은 아들로만 이을 수 있다는 사고를 낳고 결국에는 구제불능의 남아선호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PC통신내 성논쟁의 주인공인 신정모라씨는 이미 아버지의 성인 신씨와 어머니의 성인 정씨를 붙여 이름을 만들었다. 여성단체가 내세우는 안은 신씨처럼 아버지의 성을 으뜸성으로, 어머니의 성을 버금성으로 쓰자는 것이다. 이이효재 손이덕수씨 등 여성 명사들이 그렇게 새 이름을 지었다.
외국에서는 이미 여러 나라가 어머니의 성을 쓸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 또는 두 성을 합친 성 가운데 자녀의 성을 고르도록 하는 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 성을 따르되 온가족이 같은 성을 지니도록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겨우 버금성으로나마 어머니 성을 쓰자는 논의는 지극히 미온적인 제안인 셈이다.
현재로서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고 해도 그 성은 외할아버지의 성이지, 외할머니의 성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성이 모계의 면면한 전통을 잇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차라리 어머니의 성을 따르자는 논의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핏줄보다 중요한 개인의 자주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겠다. 누구의 아들, 딸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으로 떳떳하게 사는 것의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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