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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비결/송지나 방송작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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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비결/송지나 방송작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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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로부터 들은 말이고 후배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한 것이다. 그 비결은 아주 간단해서 「자기가 쓴 작품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작품을 남의 작품 보듯이만 할 수 있으면 무엇이 모자란지 넘치는지 보이고 그러면 고칠 수가 있다.그런데 이 간단한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누군가 자기 작품에 대해 비판하려고 하면 중언부언 토를 달아가며 해명하기 바쁘거나 심지어는 정색을 하며 싸우려 들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발전이란 것은 없다.

가장 나쁜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드는 자세이다. 비평을 해주겠다는 사람에게 『당신이 얘기하는 이러저러한 부분은 사실 이러저러한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걸 이해 못하겠느냐』는 식으로 강변하다보면 어느덧 스스로도 그걸 믿게 된다. 『아, 그렇구나. 내 작품에는 이런 훌륭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구나. 남들이 몰라줘도 상관없다. 나는 예술을 하고 있으니까…』하는 식으로 정리가 된다. 자기 발전은 고사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후퇴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내가 남을 보듯이 내가 나를 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심한 것도 보이고 간교하거나 더러운 부분도 잘 보인다. 그런데 나의 그러한 부분은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설령 보인다 하더라도 잽싸게 합리화를 시킨다.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 저쪽에서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낸들 별 수 있겠어?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심지어 자신의 언행에 훌륭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마찬가지 얘기지만, 이렇게 되면 자기발전이란 없다.

글을 쓸 때는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된다. 돈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지난번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존재한다. 우리 살아가는 것에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는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 우리 사는 목적이 아닐까. 예술이든 정치든 단순근로이든 하는 일이라는 것은 단지 그 목적을 위해 연마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목적은 상실하고 도구에만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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