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눈앞에 두고도 지칠줄 모르는 학탐/하루 서너시간씩 원고지와 씨름/4년전부터는 경주보존운동 주도원로미술사학자 진홍섭(79) 박사는 팔순을 눈앞에 둔 요즘도 서울 반포의 아파트에서 원고 교정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미술의 원류와 흐름, 사상과 배경 등을 밝혀줄 노작을 다듬느라 하루 서너시간 이상 원고지와 씨름한다. 지칠줄 모르는 학탐은 95년 펴낸 「한국의 석조미술」(문예출판사간)에 이어 최근에는 「신라·고려시대 미술문화」(일지사간)출간의 결실을 보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불교문화의 영향과 변천과정을 집대성한 개설서 「한국불교미술」(문예출판사에서 출간 예정)과 86년부터 항목별로 정리해온 「한국미술사자료집성」(일지사간, 전 10권) 6, 7권도 탈고했다.
황수영(79) 전 동국대총장, 고 최순우 박사와 함께 고미술사학계에서 「개성 3걸」로 불리는 진박사는 반세기가 넘는 문화재발굴 경험을 토대로 미술사이론 정립의 토대를 세웠다. 그는 우리 미술사를 관통하는 특징에 대해 고 고유섭 박사의 「무기교의 기교 또는 적조미(조용하면서도 심오한 미)」라는 말로 설명했다.
『우리의 전통미술은 불교를 중심으로 한 신앙형태의 변화와 정치·경제적 발전단계에 따라 표현양식이 달라져왔습니다. 신라는 정돈된 형태의 이상주의미술이 지배했고 선종과 풍수지리설이 유행한 고려시대에는 밝고 화려한 귀족미술이 등장했습니다. 유교를 치국이념으로 삼았던 조선미술은 자연미를 살린 소박한 미감이 두드러집니다』
진박사가 3∼4년전부터 저술작업과 함께 소매를 걷고 나선 일은 고도 경주의 보존노력이다. 경마장건설반대와 고속전철노선변경을 위해 여러차례 세미나와 서명작업을 주도했다. 결국 95년에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당국과 갈등을 빚다가 문화재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문화재위원회의 전체의견 수렴을 위한 회의소집 요청에 문화재관리국이 응하지 않자 사표를 낸 것이다.
『문화유산은 정신세계의 발전과정을 파악하는 제1차 자료』라고 강조하는 그는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개발논리를 앞세워 문화재 파괴를 계속할때 우리는 문화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후학들에게는 국내에 유입된 외국 문화의 영향을 밝히기 위한 해외교류사연구와 함께 미술품자체의 아름다움을 추적하는 미학적 관점의 연구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일본 메이지(명치)대 정경학부를 나온 진박사는 한국미술사의 개척자인 고유섭 박사의 영향을 받아 미술사로 전공을 바꾼 후 개성·경주박물관장, 이화여대 교수, 문화재위원장(85∼87년, 93∼95년)을 지냈다. 그는 건강비결에 대해 『젊었을 때 고적답사를 위해 하루 50∼60리씩 걸어다니며 다진 체력덕분인 것같다』고 말했다. 부인 우순애(77)씨와 살고 있으며 외아들 화수씨는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로 문화의 대를 잇고 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