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은 「시는 나의 닻이다」라고 했다. 최승호(43) 시인은 「시는 나의 돛이자 덫」이라고 한다.「그 동안 시는 나의 돛이자 덫이었다. 시가 부풀어 나를 설레게 했고 사해를 항해하게 했으며 닻 내릴 곳은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때로 시는 나를 괴롭혔다. 버리기 싫은 덫처럼 말이다」(「시작 노트」 전문)
77년 등단한 후 「대설주의보」 등 7권의 시집을 내며 오늘의 작가상(82년) 김수영문학상(85년) 등 쟁쟁한 수상경력도 가진 중견시인 최씨가 8번째 시집 「여백」(솔간)을 냈다. 지난해 말에서 올 초까지 집중적으로 씌어진 시편들을 묶은 것이다. 시집에는 「시작 노트」같이 덫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시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담은 작품들이 많이 실려있다. 이른바 메타시 형식의 시들이다.
그는 시집 제목으로 쓴 「여백」의 의미를 이렇게 한 편의 시로 말한다.
「나는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는다. 주장이 텅 비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시를 쓸 수가 있고 다양하게 시가 나타날 수 있다. 아무런 주장이 없는 경우 시론으로 인한 시의 이론적 결함이나 모순은 없게 된다/ 여백의 시학이란 씌어진 적도 없고 씌어진 것도 없는 시학의 텅 빈 여백을 말한다. 그 여백은 말로 채워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말들을 이미 품고 있다. 말들이 불어나면 여백은 더 넓어진다」(「시론에 대하여」 전문)
이외에도 우화 같은 시, 소설의 한 토막 같은 시, 말놀이로서의 잡문시 같은 다양한 형식 실험의 의도를 엿보게 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최씨는 『이런 격외의 작업이 불온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체와 생성의 역동성으로 움직이는 세계에서 시의 자기 부정이 없으면 시 또한 신생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출판사 세계사 주간직을 그만 두고 전업작가로 나선 그는 좌우간 회의하며 「알몸」으로 시작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눈사람에게 아무런 옷도 입히지 마십시오. 얇은 잠옷도 안 됩니다. 두꺼운 외투는 더 더욱 입히면 안 됩니다. 눈사람은 알몸으로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니까요」(「알몸」 전문)<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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