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빈곤층은 그 몇배/실업·저학력·질병속 상대적 박탈감 더 문제생활보호 대상자 141만4,000명.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구가하며 선진국 진입을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사회에는 아직 가난의 그림자가 남아있다. 절대빈곤층인 생활보호 대상자는 91년 224만6,000명에서 93년 200만1,000명, 95년 175만5,000명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는 실질적인 절대빈곤층은 그 몇배나 된다. 94년의 경우 절대적 빈곤선(월소득 69만5,000원) 이하의 도시가계가 도시가구 전체의 10.5%에 이르렀고 소비지출 기준으로는 16.8%에 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빈곤의 직접적인 원인은 실업, 또는 반실업이지만 노령이나 신체장애, 질병 등이 점차 큰 몫을 차지해 가고 있다. 전체 빈곤가구 가운데 노인, 여성가구가 각각 25.5%와 29.4%를 차지해 실직가구(39.2%)와 비슷했다. 빈곤층의 직업은 막노동 청소 파출부 등 일용직 노동자 19.8%, 영세농어민 11.3%, 영세자영업자 3.6%, 상시노동자 3.2% 등이었다. 실업자와 비경제활동 인구도 각각 16.8%와 45.5%를 차지했다.
세대주의 학력이 무학(32.8%) 국졸(41.0%) 중졸(15.0%) 등인 것도 빈곤층의 큰 특징이었다. 소비지출 내역은 식품비(32.8%) 교육비(20.9%) 주택임대료(15.3%) 보건의료비(9.6%) 등 필수지출 비중이 높은 반면 통신비 교통비 의복비 문화비 등 선택지출은 22.4%에 그쳐 일반가구의 52.8%와 뚜렷이 대조됐다. 최근에는 소비생활의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순일 박사는 『평균 가계소비지출의 60%를 상대적 빈곤선으로 잡을 때 전체가구의 19%가 그 이하에 속한다』며 『과거에는 경제낙후와 실업에 따른 사회전반적 빈곤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소비재의 종류, 문화생활, 주거형태 등 상대적 박탈감이 중요해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빈민의 거주지도 크게 달라졌다. 서울의 경우 재개발붐이 일면서 신림동과 봉천동 금호동 월곡동 등 대표적 달동네는 아파트촌으로 변모하고 있고 빈곤층은 변두리나 교외로 밀려나고 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정부의 빈곤정책과 문제점/생활보호예산 GNP의 0.12%
정부의 빈곤정책은 빈곤층에 현금이나 현물을 직접 보조해 주는 「생활보호」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141만4,000명에 달하는 생활보호대상자는 거택보호와 시설보호, 자활보호 대상자로 나뉜다. 먼저 거택보호 대상자는 근로능력이 없는 장애인이나 폐질자,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65세 이상의 노령자 세대주 가운데 재산이 2,600만원, 월소득이 21만원 이하인 경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29만7,000명의 거택보호 대상자에겐 생계비 학비 의료비를 합쳐 1인당 월 13만3,000원의 생계보조비가 주어지고 있다.
가구주가 근로능력은 있으나 재산이 2,800만원, 월소득이 22만원 이하인 자활보호대상자는 104만명에 달한다. 학비 전액을 지급하고 가구당 1,000만원의 사업자금을 대여하며 입원시 의료비의 80%를 지원한다. 거택보호대상자중 사회보호시설에 수용된 시설보호대상자도 7만7,000명에 이른다. 생활보호대상자는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 각 읍·면·동의 사회복지 요원이 재산과 소득, 부양가족 존재여부 등을 실사한 뒤 선정한다.
그러나 정부의 빈곤정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96년 정부의 생활보호예산은 4,655억원으로 국민총생산(GNP)의 0.12%에 불과, 92년 0.15%에 비해 비중이 낮아졌다. 지원금 자체가 지극히 미미해 실질적인 생활보장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대상 선정기준도 지나치게 엄격하다. 게다가 최저생계비와 빈곤기준 및 빈곤층 숫자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직업교육 실시 등 자활대책은 종교단체 등에서 마련한 지역자활센터를 지원하는 것이 고작이다. 대상자 선정과정에서의 잡음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사과정에서의 엉터리조사와 정실개입 등으로 인해 대상자가 지정에서 빠지는가 하면 비대상자가 특혜를 받기도 한다.
한국도시연구소 이호 책임연구원은 『「물고기 낚는 도구」는 고사하고 「물고기」 조차 못주는 것이 우리나라 빈곤정책의 실상』이라며 『빈곤층 증가를 막을 「안전망」 설치 및 자활능력 제고와 더불어 복지정책에 우선순위를 두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이기하 복지정책과장은 『98년까지 생계보조비를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생활보호 수혜층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그러나 보호대상에서 제외된 빈곤계층과의 형평성과 예산상의 제약 때문에 주거비와 문화생활비 등 파격적인 지원은 힘들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빈곤의 대물림/돈이 없기 때문에 교육·사업기회 제한
경제성장으로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문제가 되듯 빈곤의 원인도 개인적 문제보다는 구조적 문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가난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적 요인 가운데 가장 흔히 지적되는 것이 자금난의 악순환. 담보능력이 없고 마땅한 보증인을 구할 길 없는 빈민층으로서는 금융기관의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다. 목돈을 손에 쥘 처지가 안돼 행상이나 노점상은 자기 점포를 가질 기회를 사실상 봉쇄당한다.
교육 및 취업기회의 제한도 근본적으로는 자금난에서 비롯한다. 물론 기회자체가 막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인 저학력의 굴레는 빈민층의 취업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결국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게 마련이며 가계부담에 따른 부채증가나 무리한 노동에 따른 질환은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부모들의 빈곤은 자녀들의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빈민층은 부모가 맞벌이에 나서거나 어느 한쪽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가정의 자녀일수록 안정된 정서나 올바른 가치관을 갖기가 어렵다. 또 생계를 도와야 할 경우가 많아 배움의 부족을 겪기 쉽다. 이런 악순환은 사회가 안정될 수록 더욱 굳어져 빈민층의 수직적 상승 기회는 그만큼 폭이 좁아진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최일섭 교수는 이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더불어 정부의 빈민층 지원 부족이 빈민층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사회보장 수혜액을 조사한 결과 소득액 상위 10% 계층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고 하위 30%계층의 수혜액은 5∼10%에 불과했습니다. 사회보장 정책이 공무원 연금, 군인 연금 등 특수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에 빈곤층에 대한 지원이 줄게 된 것이죠. 중상위계층에 집중된 경제성장의 성과물이 하위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적 인식은 경제발전이 결국 그들의 노고에 바탕한 것이라는 점에서 부당하다』며 정부의 장기적인 대책을 촉구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빈민운동가 김혜경씨/“셋방 탈출은 커녕 지키기도 힘겨워”
『담이 높은 부자 동네와 달리 이곳에는 울타리가 없어요. 가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 들었지만 집성촌처럼 인정이 훈훈해요.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곡마을에서 빈민운동을 하고 있는 김혜경(58·여)씨는 『도시 빈민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을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예전보다 절대적인 임금은 많이 올랐는데도 상대적인 빈곤감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고 빈곤의 악순환은 점점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도시 빈민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주거권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돈이 모일 만하면 전세금이 어김없이 오르고, 임금상승보다 전월세금의 상승이 월등히 빨라 열심히 일하고도 셋방살이를 탈출하기는 커녕 비슷한 수준의 셋방을 지키기도 힘에 부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73년 이곳에 정착한 그는 도시빈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빈민운동가로 변신했다. 주민들의 건강 의료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을 만드는 등 공동체운동을 펴 왔다. 91년 주민들의 공동추대로 출마해 당선된 이래 6년째 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빈민들은 대부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녀교육을 제대로 못시켜 고용불안이 자식들에게 이어지고 있어요. 동네에 직업훈련기관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육체노동으로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위한 의료기관도 절실합니다』
그는 『도시 빈민들에 대한 지원정책이 시혜적 성격이어서는 곤란하다』며 『공공사업이나 시설에 대해 사전에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주체성을 갖도록 도와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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