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베이징(북경)의 봄은 안개가 짙게 깔려 있다. 춘래불사춘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북서쪽 사막지대로부터 불어닥치는 황토바람이야 자연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13억 대륙의 운명을 바꾼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주도한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의 죽음은 권력 상층부에 농무보다 더욱 헤아리기 어려운 난기류를 만들고 있다.등은 죽기전 수년동안 심모원려로 권력을 안배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등 사후에 대비했지만 문화혁명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울타리에서 살고있고 개혁개방의 낙오자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어지러운 현실은 감동적이었던 등의 장례절차마저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떨어진 발등의 불은 지난달 12일 베이징 한국대사관에 날아온 평양정권의 이데올로그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망명요청사건이다.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일방적으로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치체제가 성립된지 반세기가 지난 현재, 북한체제의 정신적 지주였던 주체사상의 1인자가 우리 체제로 넘어온 것이다. 당장 한반도 정세의 격변은 물론이고 한·중, 북·중간의 위상에도 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황비서 망명이후 베이징의 한국공관과 남북한인, 재중동포사회에는 준전시상태를 방불케하는 불안한 상황이 한달 이상 계속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한반도 전면전 상황까지 상정해 놓고 중국을 둘러싼 남북한의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고 있으나 한국측의 협상태도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남북간 체제경쟁의 종식을 의미할 수도 있는 이 사건에 한국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민정부나 한국의 정치인들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총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좋은 역사적 조건을 단순외교적 사안으로 오히려 부담스레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측의 위축된 협상태도도 문제다. 지난 1일 중국의 전인대 개막식에는 수많은 주중 외국대사들이 초청됐다. 우리로서는 자연스럽게 외국대사들을 만나 황비서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호기였다. 그러나 식장에 주창준 북한대사의 차량은 보였으나 한국대사관 차량은 찾을 수 없었다. 협상팀이 중국외교부를 출입하면서 대사관 차량이 아닌 중국 번호판을 단 차량을 이용하는 것은 조심성을 넘어선 실수이거나 판단착오이다.
평소 소위 한국의 지도급인사를 자처하는 수많은 정치·경제인들은 중국에 와서 중국 고위층과 친분을 과시하려 돈을 물쓰듯 한다. 이들이 황비서사건을 놓고 중국친구들에게 전화라도 해서 조속한 사건해결을 당부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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